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 책은 이광수의 <무정>으로 알려져 있다.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되고 그 이듬해에 책으로 출간되어 1만 부나 팔렸다. <무정>은 전통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선택한 청춘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그때에도 연애 이야기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무정>은 1980년대 크게 유행하였던 한국문학전집 등에서도 빠지지 않았던, 상당히 긴 세월 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던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대에는 출판계 최고의 효자 상품은 족보였다. 너도나도 족보 찍기에 나서면서 출판사들을 먹여 살린 것이다. 족보는 당시 문학 책들과 함께 가장 인기가 많은 출판 아이템이었다. 동아일보에서는 이를 출판계의 우울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일제는 족보를 통해 핏줄을 확인하고 민족성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경계하여 이를 억압하기도 했다.

해방이 되면서 출판시장도 엄청나게 성장을 했다. 일제의 폭압으로부터 벗어나면서 그 동안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일시에 폭발했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이 유흥계와 출판계였다. 책을 찍어내는 족족 다 팔려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나라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종이가 귀해 아이들 가르칠 교과서 찍어낼 형편도 못되자 출판시장도 어려워졌다.

1950년대 들어서면서 출판시장에도 붐이 일어났다. 1954년 나온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출판시장에 불을 붙였다. 대학교수 부인이 미국식 자유화 바람에 휩쓸려 일탈을 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순식간에 14만부나 팔려나갔다. 대학교수 부인이나 되는 사람이 춤바람이 나고 외간 남자와 연애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비난을 하면서도 자유부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숨길 수 없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와 작가가 작품을 놓고 지상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8년부터 대형서점들이 베스트셀러 집계를 내놓기 시작하면서 베스트셀러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주간, 월간, 연간 단위로 발표되는 베스트셀러 순위는 여과 없이 각 신문사 문화면에 실렸고 그에 따라 출판사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출판사들은 자사 출간 책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썼다. 신문이나 방송, 대중교통 등의 광고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부었다. 당시 광고비 지출이 가장 세다는 화장품 업계 광고비가 매출액의 10퍼센트 정도였지만, 매출액의 20퍼센트 이상을 광고비로 쓰는 출판사도 있었다. 이 때문에 베스트셀러를 내고도 망하는 기이한 일도 벌어졌다.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기 위해 가장 많이 한 것이 사재기였다. 자사 출간 책을 아르바이트생을 시켜 무더기로 사들이게 하는 방법 등을 통해 순위를 올렸다. 문제가 되자 출판사들이 스스로 감시하고 법적 대응을 했지만 사재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사재기는 서점들이 베스트셀러 집계 발표를 하지 않으면서 수그러들었다.

요즘 새롭게 음원시장에서 사재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음원을 사들여 순위를 높인다는 것인데, 공정치 못하다는 비난과 함께 그 역시 마케팅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도 있다. 공정경쟁, 참 어려운 문제다. 공정하게 함께 성장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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