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최근 국가기념일이나 여러 공적 행사에서 일어나는 추한 장면들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온 국민이 그 기념일의 본래의 숭고한 정신과 취지를 이해하며, 그에 걸맞은 행사로서 단합된 국민의 힘과 의지를 모으는 계기가 되면 참 좋으련만, 국민통합은 고사하고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장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

상해임시정부수립기념일에 즈음해서도 대한민국 건국의 시기와 관련해 극단적 의견대립이 있고, 5.18기념식에서도 특정 정당의 대표가 봉변을 당하는 촌극이 벌어졌으며, 기념식장이 한 때 아수라장이 되었다. 또한 대통령의 기념식사의 내용 중 일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정파 간의 격한 논쟁의 빌미가 되고 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국민들의 생각이 왜 둘로 쪼개질까? 기념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하게 된 역사적 사실과 평가와 당위가 있을 것인데 왜 저렇게 확연히 호불호가 구분되어 죽기 살기로 다투는 것일까?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왜곡된 개인적 평가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러한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옥석을 가리는 진정한 대화와 토론의 장이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역사적 의미가 담긴 기념일을 그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순응하여 국민통합을 이룰 기회로 삼기 위해 동일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 간의 이해와 관용이 필요하다. 삼일절, 4.19혁명 기념일은 이념진영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으므로 다른 기념일도 이와 같은 동일한 마음가짐으로 옷깃을 여미며 함께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회가 곳곳에서 갈라지고, 여기저기서 역사의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증하는 오늘 날의 분위기 속에서 국가기념일은 갈등과 분열을 씻고 통합을 향하는 계기로 삼으며 나라의 내일의 발전을 기약하는 소중한 약속의 시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념일을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기념일이 제정된 그 목적과 의미를 아전인수식으로 특정정파나 세력의 이익에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역사적 평가를 단정적으로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 사건을 기념하게 된 그 역사적 진실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 사건의 정신을 미래의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승화‧계승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은 역사적 사실 그대로 국권을 탈취당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백성의 여망을 담아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이므로, 그 엄혹한 시대에 아시아지역 최초로 민주공화정을 염원했던 선각자들의 정치사상과 신념을 찬양하며, 그 숭고한 뜻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다짐의 날로 기리면 될 일을, 구태여 현재의 대한민국의 수립과 연결시켜 국론분열을 부추기는 의도는 결코 애국적 발상이라고 볼 수 없다. 5.18기념식도 그렇다.

지난날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5.18기념사에서 5.18의 역사적 참 의미를 되새기며, 그 정신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근본으로 삼자는 간절한 대국민 호소의 내용이 지금도 마음에 다가온다. 기념식이 있을 때마다 극단의 대립과 갈등의 장면을 노정시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사건의 진실을 외면케 하는 독약이며 국민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 사건의 희생자의 영혼의 안식도 주지 못한다. 부디 기념식에서의 기념사가 국민을 편가르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좀 더 정제되고, 절제된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야유와 성토가 난무하는 시위장이 아닌, 거룩하고 숭고한 뜻을 받드는 의식을 통한 국민의 하나 됨의 장이길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