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가치, 인권과 정의 
[시사칼럼]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가치, 인권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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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상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최근 한국사회의 적폐정국은 더욱 더 갈등과 분열을 확산시키는 것 같아 난감하기 짝이 없다. 경제상황도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돈지경에서 서민의 삶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며, 정치상황도 정치원리와 상치되는 모습이다.

오늘의 한국정치판은 괴물로서 국민의 삶을 피곤케 하고 사회 공동체의 공의를 짓밟는 흉물스러운 무법자일 뿐이다. 노동, 복지, 교육 등 사회분야는 분쇄해야 할 과거만 있고, 보존해야 할 현재는 없고, 만들어나가야 할 미래의 비젼은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밤길과 같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국민의 권리보호와 인권보장의 보루인 사법부가 강풍에 휘어져 곧 부러질 듯 흔들리는 나무처럼 기우뚱한 자세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저 모습이다. 참으로 기막힌 모습이다.

입법부는 선거로 개혁할 수 있고, 행정부 또한 정권이 바뀌면 맞춤식(?) 공직선발과정을 통해 해체와 조합이 가능하지만, 사법부는 쉬이 회복이 어려운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사법부는 국민에게 큰 걱정을 안기기 마련이다. 건국 초기에 정부의 거대권력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 했던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가 그리운 것은 나약한 법학도인 필자만의 옹졸한 중얼거림일까. 권력기관이 총체적으로 정부나 정권의 입맛을 맞추는 호위무사의 모습으로 비춰지면 그건 선진형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참모습이 아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 했던가? 역사는 순간으로 보면 굴곡지지만, 멀리 조망해 보면 조금씩 전진하고 발전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가 아니던가. 만에 하나 한국의 현대사가 모든 과거는 적폐의 대상이며, 현재는 불의와 불법이 별 수치심을 느끼지 않은 체 버젓이 활보하며, 미래는 아예 도래하지 않을 것 같은 유한의 세상을 사는 것으로 오해받는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망나니의 칼부림이 역사의 흐름의 주체가 돼 역사를 후퇴시키는 인위적 현대사가 아니길 학수고대한다. 

국가지도자는 물론이고 누구나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고귀한 가치인 정의와 인권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인식하고 인권과 정의를 수호해야 한다. 인권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이다. 인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차별받지 않을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권리로서, 하늘로부터 받은 불가침·불가양의 천부인권이다. 사람의 인권이 보장될 때 정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제10조)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과 정의의 보루는 사법부이다. 오늘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전의 사법부의 전횡을 도려내야 한다는 적폐청산 주장과, 다른 하나는 이전 정치세력을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숙청하듯 완전히 정치보복을 가하는 마녀재판의 현장으로 보는 시각이다. 

참군인으로 평가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자살과 안타까운 내용의 유서, 공관갑질로 시민의 공분을 사게 했으나 무혐의로 풀려난 박찬주대장의 애국적 절규의 전역사를 접하면서,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누명을 쓰는 자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혐의만으로 멀쩡한 사람을 몰망신을 줘 인격파탄자로 전락시키는 법원·검찰의 포토라인이 인권과 정의의 보루인 법원·검찰의 앞마당에 있는 게 과연 맞는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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