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4)
[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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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정조(正祖)의 이복동생 은신군(恩信君)은 나중에 복권되기는 했으나 역모혐의를 받고 제주도에 귀양갔다가 죽은 왕족(王族)인데 후손을 두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인평대군(麟坪大君)의 6대손 이병원(李秉源)의 아들 이채중(李寀重)을 은신군의 양자로 입적(入籍)했다.

이채중은 남연군(南延君)으로 봉해진 이후 이름을 왕실명인 구(球)로 개명했는데, 남연군은 고종(高宗)에게 생가(生家)로 조부(祖父)가 된다.

한편 고종이 즉위할 당시의 과정을 고종실록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계해년(철종 14년) 12월 8일 경진일, 철종이 승하하자 조대비가 현임 대신과 전임 대신들을 중회당에 불러 모았다. 조대비가 발을 친 안쪽에 앉고 대신들이 밖에 시립해 있었다.

영부사 정원용이 말하기를“신하와 백성들이 복이 없어 상감이 승하하는 이런 기막힌 변고를 당했으니 애통하고 원통한 심정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자, 조대비가 말하기를 “죽지 못해 사는 이 몸이 차마 당하지 못할 이런 기막힌 꼴을 당해 그저 원통한 생각뿐이오. 지금 나라의 형편을 보면 위태로워지느냐 안정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시작을 다투기 때문에 여러 대신들을 청해다가 종묘사직의 큰 계책을 의논하여 정하자는 것이오”라고 했다.

정원용이 다시 말하기를“빨리 대비께서 교지를 내려 큰 계책이 곧 정해지기를 천만번 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조대비가 다시 말하기를“흥선군의 적실 몸에서 난 둘째 아들 명복을 데려다 익종대왕의 뒤를 잇게 하시오”라고 했다.

한참 후 정원용이 다시 말히기를“언문으로 된 교지를 써서 내려보내 주십시오”라고 했다.

조대비가 발 안에서 언문으로 된 교지를 써서 내놓았다. 도승지 민치상이 받아다가 한문으로 바꾸어 서술한 것을 여러 대신들이 돌려 본 다음에 다시 조대비에게 읽어 드리고 나서 가지고 나와 반포했다.

조대비가 다시 교지를 내렸다.“ 흥선군의 둘째 아들의 작위는 익성군으로 할 것이오.” >

이렇게 하여 익성군(翼成君)이 선대왕(先大王)인 철종(哲宗)이 아닌 익종(翼宗)의 양자로서 왕위를 계승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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