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1)
[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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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비운(悲運)의 황제(皇帝) 고종(高宗)의 붕어(崩御) 100주년을 기억하면서 70평생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20회에 걸쳐서 연재한다.

이와 관련해 고종황제(高宗皇帝)는 조선왕조 제26대왕으로 즉위했으나 1897년(광무 1) 10월 12일에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宣布)하면서 황제로 등극했기 때문에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호칭을 고종으로 통일한다.

고종황제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전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차남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조선의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인지 역사적인 배경을 소개한다.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正祖)가 원대한 포부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1800년(정조 24) 6월 28일 의문의 승하(昇遐)를 했다.

정조의 왕위를 이어서 계승한 순조(純祖)는 1790년(정조 14) 창경궁(昌慶宮) 집복헌(集福軒)에서 정조와 유빈박씨(緌嬪朴氏) 사이에 출생했으며, 얼마 되지 않아서 원자(元子)로 책봉받게 됐으나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받은 것은 11세가 되는 1800년(정조 24) 2월이었다.

그런데 왕세자로 책봉된지 불과 4개월만에 정조가 승하하면서 7월에 11세의 어린 연령으로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했다.

이와 관련해 순조는 어린 연령에 왕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왕실의 법도에 따라 증조모뻘이 되는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다.

그러나 순조가 즉위한 이듬해인 1801(순조 1)년에 신유박해(辛酉迫害)가 발생했는데 이러한 박해를 배후에서 주도한 장본인이 바로 정순왕후였다.

정순왕후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천주교 탄압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정조의 개혁정책을 지지했던 남인계 세력들의 제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가환(李家煥)을 비롯해 권철신(權哲身),정약전(丁若銓),정약종(丁若鍾),정약용(丁若鏞) 형제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귀양을 갔다.

한편 순조는 본격적으로 왕세자 수업을 받으려고 하는 때에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부왕(父王)의 승하를 겪었으니 마음의 준비도 없이 보위에 오르게 된 불행한 왕이었다.

1803년(순조 3)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중단하고 2년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순조는 1808년(순조 8) 김재찬(金載瓚)의 보필을 받아서 실무관원과의 접촉, 암행어사 파견, 만기요람 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친위관료 육성을 실시하는 등 여러 개혁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러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처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가문의 영향력과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의욕적으로 출발한 개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했으며 1809년(순조 9) 대기근(大飢饉)과 1811년(순조 11)에 발생한 홍경래(洪景來)의 난(亂)을 겪으면서 국정의 주도권을 안동김씨 세력들이 차지하면서 본격적인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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