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2)
[박관우 칼럼] 비운의 황제 고종의 파란만장한 생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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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순조(純祖)에게 희망이 있었으니, 그것은 외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였는데 자신의 못다 이룬 부국강병(富國强兵)의 꿈을 효명세자가 계승하기를 원했으며, 이는 부왕(父王)인 정조(正祖)의 유지(遺志)이기도 했다.

효명세자는 1809년(순조 9) 순조(純祖)와 순원왕후(純元王后) 사이에 출생하였으며, 1812년 (순조 12) 4세에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됐으며 1819년(순조 19) 풍양조씨(豊壤趙氏) 가문(家門)의 조만영(趙萬永)의 딸과 가례(嘉禮)를 올렸는데 이가 바로 헌종(憲宗)의 생모이면서 흔히 조대비(趙大妃)로 알려졌던 신정왕후(神貞王后)였다.

또한 효명세자는 부왕의 뜻을 계승해 1827년(순조 27) 대리청정(代理聽政)을 수행할 정도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왕세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조부(祖父) 정조의 유지를 계승코자 했으며, 부왕의 꿈을 이루려고 했던 효명세자가 불과 22세라는 젊은 연령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급서(急逝)했다.

이로써 효명세자를 통해 처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력을 견제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려고 시도하였던 순조의 꿈이 효명세자의 뜻밖의 급서(急逝)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정조가 의문의 승하(昇遐)를 당한 이후 효명세자가 순조의 뒤를 이어서 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했다면 조선은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그것은 효명세자가 정조의 뒤를 이어서 성군(聖君)이 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라 할 수 있었던 그의 급서(急逝)가 비통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한편 기대를 했던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난 이후 순조는 결국 1834년(순조 34) 향년(享年) 45세를 일기(一期)로 승하했으며, 순조의 뒤를 이어서 보위에 오른 헌종은 효명세자의 아들이 되는데, 순조가 승하할 당시 불과 8세라는 어린 연령이었기에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는데, 순원왕후는 안동김씨 가문의 핵심인물인 김조순(金祖淳)의 딸이었다.

8세라는 어린 연령에 보위에 오른 헌종은 15년을 재위하다가 불과 23세라는 젊은 연령에 승하했으니 효명세자에 이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헌종(憲宗)의 뒤를 이어서 영조(英祖)의 현손이며, 정조(正祖)의 이복동생 은언군(恩彦君)의 손자가 왕위를 계승했으니 바로 철종(哲宗)이었다.

이와 관련해 철종은 강화도에서 어린 시절부터 농부로 자랐기 때문에 학문하고는 거리가 먼 왕족이었으며, 안동김씨 가문이 자신들에게 편한 왕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왕이었다.

철종은 즉위한 해인 1849년(헌종 15)에 연령이 19세였으며, 14년을 재위하다가 1863년(철종 14) 33세라는 젊은 연령에 승하했다.

그런데 당시 철종의 유일한 혈육은 영혜옹주(永惠翁主)이었기에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었는데, 정조의 또 다른 이복동생 은신군(恩信君)의 손자인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당시 왕실의 최고어른인 조대비(趙大妃)의 합의에 의해 흥선대원군의 차남이 효명세자가 추존(追尊)이 된 익종(翼宗)의 아들로 입적되어 익성군(翼成君)에 책봉되면서 철종에 이어서 제 26대 왕으로 즉위하니 이가 바로 고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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