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소]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인 강진 생가… “서정·민족저항 시인”
[지역명소]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시인 강진 생가… “서정·민족저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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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전대웅 기자]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 앞에 있는 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 ⓒ천지일보 2019.4.26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 앞에 있는 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 ⓒ천지일보 2019.4.26

영랑 김윤식 생가
 

3.1운동 후 고향에서 활동
독립운동으로 옥고 치르기도
작품소재 생가에서 주로 찾아
26~27일 강진 영랑문학제

[천지일보 강진=김미정 기자]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중략)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 마금날 내 깨끗한 마음 건지기 위하여.”

서정시인이자 민족저항 시인인 영랑 김윤식 시인의 ‘독(毒)을 차고’라는 시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이리(일제)’와 ‘승냥이(친일파)’가 판을 치는 짐승 같은 세상이라고 보고 독(毒)을 차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독립투사의 의지를 시를 통해 표현했다. 

그는 서정 시인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와 동시에 독립투사로서 민족저항 시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김영랑 시인의 본명은 김윤식이다. 어릴 때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했으며 ‘영랑’은 아호로써 시문학((詩文學)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의 삶을 찾아 지난 18일 강진군 강진읍에 있는 영랑생가를 찾았다. 

◆영랑의 모란은 무엇이었나?

영랑 시인은 1903년 1월 16일 강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지주였던 그의 집은 부유했다. 그러나 양반가는 아니었다. 영랑생가 앞에서 만난 박선덕 해설사는 “영랑생가의 기둥을 보면 가늘다. 양반가의 기둥은 원통형을 주로 사용했다면 서민들의 집은 원통형을 쓸 수 없었다.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생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비(제목: 모란이 피기까지는)가 눈에 띈다. 1934년 그 시대 당시 남도의 사투리를 그대로 써놓은 것이다. 모란은 김영랑 시인의 아버지가 꽃보다는 뿌리를 한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시구에는 ‘360일(三百예순날)’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에 대해 박 해설사는 “모란은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이 360일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월이 되어 꽃망울이 생기면 금방 꽃을 피울 것 같지만 한 송이 꽃을 피우는데 거의 20여일이 걸린다”며 “인내를 해야만 볼 수 있다. 그런데 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단 5일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시는 조국의 광복을 간절히 기다린 마음으로 쓴 시라고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설의 무희였던 최승희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해 이 시를 지었다는 비화도 있다. 

박 해설사는 “조국의 광복을 생각하며 읊어도 맞고 나의 사랑을 대입해 읊어도 맞다”며 “시를 읽고 느끼는 데 있어 정답은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영랑 시인의 모란은 최승희로 추정되기도 한다. 실제 영랑 시인은 최승희와 헤어지고 난 후 이별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생가의 동백나무에 목을 매달았다가 빨리 발견되어 살 수 있었다.
 

‘전설의 무희’ 최승희. ⓒ천지일보 2019.4.26
‘전설의 무희’ 최승희. 정성길 관장이 제공한 원본사진 ⓒ천지일보 2019.4.26

◆독립투사이자 민족저항 시인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후 독립선언문 사본을 가지고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돼 대구 형무소에 6개월간 갇혀 옥고를 치렀다. 이후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죄 형량이 정해지지 않아 미결수로 풀려난다. 192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서 수학하던 중 간토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박 해설사는 “지주로 불릴 만큼 잘 사는 집이어서 아름다움만 추구하고 낭만적인, 서정적인 시만 읊었다고 한때 평가절하되기도 했다”며 “영랑의 속마음을 조금만 더 들여다본다거나 독립활동사를 안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오해가 많이 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식민지화한 일본의 야욕이 정점을 달리던 1930년대 말 영랑 시인은 당시 상황을 ‘이리(일제)’와 ‘승냥이(친일파)’가 판을 치는 짐승 같은 세상이라고 보고 독(毒)을 차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저항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에 영랑 시인은 지난 3월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건국포장을 받았다. 김구 선생이 강진에 독립자금을 모으러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영랑 선생도 쾌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를 찾은 관광객들이 생가를 둘러보며 모란꽃을 보고 있다. (제공: 강진군) ⓒ천지일보 2019.4.26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를 찾은 관광객들이 생가를 둘러보며 모란꽃을 보고 있다. (제공: 강진군) ⓒ천지일보 2019.4.26

◆영랑이 주로 작품활동 한 사랑채

1925년에 건축된 사랑채는 원형 그대로다. 주택과 정자의 모습을 접목해 지어졌으며 시문학파 동인 중 정지용·박용철 등이 자주 찾아 문학에 대해 논의하고 시문학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영랑 시인은 북 치는 솜씨도 좋아 웬만한 고수 못지않은 역할도 했다고 한다. 

사랑채 뒤편 기둥 아래는 태극기를 숨겨두기도 했다. 박 해설사는 “1945년 광복이 됐을 때 강진의 독립투사들이 영랑 시인의 집으로 모여들어 사랑채 뒤쪽 계단 밑에 숨겨둔 태극기와 벽장에 넣어둔 거문고, 가야금, 북 등을 꺼내어 애국가를 연주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영랑 시인은 작품 소재를 주로 생가 주변에서 많이 찾았다. 동백나무를 바라보며 지었다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은 그의 데뷔 시다. 시문학지 13편 중에 가장 먼저 실리기도 했다. 박용철이 영랑보다 이 시를 더 좋아해서 맨 앞에 실었다. 1930년대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며 갈등하는 영랑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마당 한쪽 장독대 옆에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비가 보인다. ⓒ천지일보 2019.4.26
[천지일보=전대웅 기자] 마당 한쪽 장독대 옆에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시비가 보인다. ⓒ천지일보 2019.4.26

마당 한쪽에는 장독대가 놓여 있는데 ‘오메 단풍들것네’라는 시비도 눈에 띈다. 이 시는 초가을 누이가 감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추석이 다가오자 걱정하는 누이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시의 원래 제목은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이다. 

박 해설사는 “영랑의 첫 시집이 박용철에 의해 1935년에 나오는데 편집 후기에 ‘우리의 시는 살로 새기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시가 지나가는 걸음에 대충 읽어 치워지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열 번 스무 번 백번 읊어서 저절로 외워졌을 때 느낌이 우러나오길 바란다. 이게 오직 우리의 하나의 바람이다’라고 돼 있다”며 “제목으로 인한 선입견을 없애려고 일부러 제목을 뺐다”고 말했다. 

또 “제목이 없다 보니 내용에 충실하게 되고 1번 시, 2번 시, 하다가 나중에 헷갈리니까 맨 앞 소절이나 대표되는 단락이 시제로 등장하는 변천 과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랑 시인은 생애 87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유품은 남아있지 않다. 광복 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그가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6.25 전쟁이 터져 마루 밑에 시 등을 묻어뒀지만 폭격으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으로 6~7개월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 청와대에 일본의 유명한 사찰 그림이 있어 영랑 선생이 이것을 지적하자 치웠다는 일화도 있다.
 
한편 26일부터 27일까지 강진 영랑 문학제가 영랑생가 일원에서 개최된다. 영랑 선생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발자취를 찾아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보길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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