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나무에 꽃들이 피어난 운림산방 모습. (제공:진도군) ⓒ천지일보 2019.4.29
봄을 맞아 나무에 꽃들이 피어난 운림산방 모습. (제공:진도군) ⓒ천지일보 2019.4.29

진도 운림산방

유배인 영향으로 문화 발전

5대에 걸쳐 화가 명맥 이어

허련 ‘예술’이란 열매 맺어

[천지일보 진도=전대웅 기자] 대한민국 서남단에 자리한 보배로운 섬 진도(珍島). 진도는 남도 미술의 산실인 운림산방을 비롯해 망자의 혼을 달래는 씻김굿 등 일찍이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고려·조선 시대 문인들의 유배지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 출신이 많았다.

대표적으로는 선조와 숙종 시기 영의정에 올랐던 노수신과 김수항, 양명학자이면서 명필이었던 이광사 등이 진도에 머물렀다. 강제로 낯선 섬에 정착할 수밖에 없던 유배인의 영향으로 진도는 풍부하고 독특한 문화예술이 발전됐다.

◆5대에 걸친 화가 집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집안 대대로 가보를 이은 곳은 얼마나 될까. 진도의 운림산방은 5대에 걸쳐 우리나라 그림의 한 획을 이루고 있어 남종화의 성지이자 산실이라고 한다. 남종화란 전문화가가 아닌 선비들이 즐겨 그렸던 수묵담채로 색채를 이용하지 않고 여백의 미를 중요시한 그림이다. 소치, 미산, 남농, 임전 등 5대에 걸쳐 조선 시대부터 전통 남화를 이어가고 있다. 허련 선생은 시·서·화가 뛰어나다고 해서 삼절이라고도 불린다. 소치 허련 선생의 손자인 남농 허건은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입선하고 1944년 특선에 오를 정도의 특출한 실력을 보였다. 허건의 그림은 항상 구름이 함께하고 어쩌다 새 한 마리나 배 한 척이 떠 있는 데 본인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천지일보 진도=전대웅 기자] 소치 선생이 낙향한 후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모습. ⓒ천지일보 2019.4.29
[천지일보 진도=전대웅 기자] 소치 선생이 낙향한 후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모습. ⓒ천지일보 2019.4.29

◆남종화 명맥 이른 소치 허련

조선 남종화의 명맥을 이은 소치 허련(小痴 許鍊)은 ‘예술’이라는 열매를 맺은 인물이다. 그는 조선 시대 명문가 중 하나인 양천(陽川) 허씨의 후손으로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허련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상심한 마음을 그림 그리는 것으로 달래었다. 그는 제대로 된 스승이 없어 고심하던 차에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 찾아가 대대로 내려오는 명화첩을 통해 그림에 대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했다. 허련 해남의 일지암에 초의선사가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의선사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학문과 인격을 공부했다. 32살에 초의선사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하로 입문해 본격적인 서화 공부를 하게 됐다. 허련 선생의 그림 실력은 당시 임금인 헌종의 귀에도 들어가 문인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해졌다. 이후 추사가 타계하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운림산방을 짓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지냈다.

한진희(61, 여) 문화관광해설사는 “속설로 허련 선생은 임금과 나란히 앉아 먹을 갈고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며 “헌종 임금을 15번이나 독대하는 영광을 누린 분”이라고 했다.

소치전시관에 전시된 허련 선생과 그의 후손의 작품들. (제공:진도군) ⓒ천지일보 2019.4.29
소치전시관에 전시된 허련 선생과 그의 후손의 작품들. (제공:진도군) ⓒ천지일보 2019.4.29

◆허련 선생이 지은 ‘운림각’

소치 허련 선생은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첨찰산 자락의 양지바른 곳에 ‘운림각’이라는 화실을 지었다. 이 운림각이 오늘날의 운림산방이다. 운림은 안개와 구름이 낄 때 안개가 숲을 이룬다고 해서 운림(雲林)이라고 불렀다. 소치는 83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특유의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소치가 타계하고 그의 아들인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자 이곳은 매각되면서 예전의 모습을 잃고 폐가가 되다시피 변했다. 이후 그의 후손인 허윤대가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이고 1982년 허건이 운림산방을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노력으로 운림산방은 지난 1981년 10월 전라남도기념물 제51호로, 2011년 8월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80호로 지정됐다. 운림산방 입구에 들어서면 큰 연못과 연못 가운데 허련이 직접 심었다는 백일홍이 우뚝 서 있다. 새벽에 안개가 끼면 구름에 떠다니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보지 못해 안타깝다. 전시관에는 소치 선생과 그의 후손들의 그림과 서예를 감상할 수 있다.

한진희 해설사는 “그림을 보면 고고하면서 우아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 김가영(가명, 40대, 여)씨는 “그림을 보고 운림산방을 다시 돌아보는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듯이 포근한 느낌”이라며 가족과 함께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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