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해남 미황사 전경. 사찰 뒤로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천지일보 2019.3.22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해남 미황사 전경. 사찰 뒤로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천지일보 2019.3.22

소가 머문 자리에 미황사 창건

정유재란 때 전각·기록 소실돼

1300년 역사 자랑 “자부심 느껴”

천년의 세월을 품은 구도의 길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산은 기묘한 바위가 병풍처럼 솟아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바위 병풍을 배경으로 두르고 다도해가 내려다보는 자리에는 달마산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천년고찰 미황사가 자리 잡고 있다.

미황사는 특이한 창건실화를 간직하고 있다.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 때인 749년 돌배 한 척이 사자포(땅끝마을) 앞바다에 나타났으나 며칠 동안 사람들이 다가가질 못한다. 이에 의조 화상이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자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인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함과 검은 바위가 있었다. 금함 안에는 화엄경·법화경과 비로자나불 등이 있었고 검은 바위가 깨지면서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날 밤 의조 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을 우전국(인도) 왕이라 소개하며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날 의조 화상이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처음 넘어진 곳에 세운 절이 통교사, 마지막 넘어진 곳에 세운 절이 미황사라고 전한다. 미황사라는 이름도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미’자를 넣고 금의 빛깔에서 ‘황’자를 따 미황(美黃에)사라고 지었다 한다.

이후 미황사는 조전 중기까지 12 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했다. 그러나 정유재란을 겪으며 대부분 전각이 불타면서 기록까지 소실됐다. 지난 1980년대까지 버려졌던 절이었지만, 25여년전 현공스님과 현 주지인 금강 스님이 절에 들어와 옛 영광을 복원하고 있다.

◆천년 사찰 미황사의 보물 ‘대웅보전’

미황사의 말끔히 정리된 돌계단을 타고 오르면 푸르른 하늘에 병풍바위가 우뚝 솟은 듯한 달마산과 그 아래 천년 역사를 간직한 대웅보전이 있다. 보물 제947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다포계의 팔각지붕으로 대법당중수상량문에 의하면 응진전과 함께 1751년에 중수됐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보는 이에게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전해준다. 대웅보전 천장에는 범어로 쓰인 글자와 일천 불의 벽화가 있다. 무한의 의미를 나타낸 천 개의 수. 이는 중생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사상을 담고 있다. 천장 곳곳에 그려진 천 불의 부처님 때문에 이곳에서 세 번 절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미황사의 대웅보전은 위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다. 대웅보전과 응진당 사이의 계단에서 대웅보전을 바라보면 온 세상의 업을 이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모습이다. 청안 미황사 사무장은 “미황사는 일반인이 와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수행하는 공간”이라며 “1300여년의 끊이지 않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웅보전 앞에서 괘불을 걸고 금강 주지 스님이 괘불제를 올리고 있다. (제공:해남군) ⓒ천지일보 2019.3.22
대웅보전 앞에서 괘불을 걸고 금강 주지 스님이 괘불제를 올리고 있다. (제공:해남군) ⓒ천지일보 2019.3.22

◆가뭄엔 비 내려준다는 ‘괘불’

미황사에는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과 조선 불화의 단순미를 고루 간직한 괘불(보물 1342호)이 모셔져 있다. 이 괘불은 조선 후기 괘불(영조3년 1727년)로 높이 12m, 폭이 5m나 된다. 괘불은 다른 괘불처럼 야외법회 때 걸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용도로도 쓰여 왔다.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낸 연후에 달마산 정상에 올라 불을 지피면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독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이 찾아와 괘불을 내걸고 기우제를 지내자고 요청한다고 한다. 서정리 마을 주민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 1992년 즈음 기우제를 지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달마산으로 먹구름이 몰려와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아들 낳고 싶다면 ‘명부전’으로

명부전 안에 있는 10대 시왕을 조각해 모신 사람은 국보인 ‘자화상’을 남긴 공재 윤두서다. 그가 명부전에 10대 시왕을 모신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없어 절 근처에 있던 은행나무를 베어 10대 시왕을 조성했는데 그 후 신기하게도 10명의 아들을 보았다 한다. 더욱 믿지 못할 일은 시왕 중 네 번째 시왕의 두 눈 크기가 실수로 서로 다르게 조각되었는데 그의 넷째 아들도 눈 크기가 달랐다 한다.

이곳을 찾아 절을 올리던 허미란(가명, 여, 60대, 강진군)씨는 “가족의 평안과 결혼한 아들이 아이를 가지길 바라면서 예를 올렸다”며 “이곳 미황사에서는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니 소원이 이뤄질 것 같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미황사 부도전에서만 볼 수 있는 해학적인 동물문양이 새겨진 부도. ⓒ천지일보 2019.3.22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미황사 부도전에서만 볼 수 있는 해학적인 동물문양이 새겨진 부도. ⓒ천지일보 2019.3.22

◆수행의 깊이 짐작게 하는 부도

대웅보전에서 세심당을 지나 산길을 따라 700m 정도 올라가면 21기의 부도와 5기의 탑이 보인다. 모두 조선 시대 후기 1700년경 세워진 부도다. 부도로 모신 스님들은 조선 후기 대흥사와 미황사에서 대중의 존경을 받는 큰스님들로서 연담 유일 스님을 비롯한 대흥사 12 종사의 당시 내로라하는 스님들이다. 당시 이곳을 중심으로 수행하던 스님의 수행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미황사를 찾은 한 관광객은 “새소리를 들으면서 걸으니 마음이 맑아진다”며 “속세에서 벗어나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해학 넘치는 동물상도 있다. 게와 거북이, 오리, 물고기, 문어, 원숭이, 토끼, 용머리, 도깨비 얼굴, 연꽃들이 새겨진 부도들은 종교적인 권위보다는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꾸밈이 없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즐거움에 빠지게 한다.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달마산 정상에 견고한 요새처럼 지어진 도솔암은 구름 낀 날이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천지일보 2019.3.22
[천지일보 해남=전대웅 기자] 달마산 정상에 견고한 요새처럼 지어진 도솔암은 구름 낀 날이면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천지일보 2019.3.22

◆구름 끼면 하늘에 떠 있는 듯 ‘도솔암’

도솔암은 달마산의 가장 정상부에 있다. 구름이라도 끼인 날이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선경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석축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곳에 자리 잡은 도솔암은 누가 봐도 마치 견고한 요새 같다. 도솔암을 지은 의조 화상은 어떻게 산 정상에 암자를 지었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도솔암은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일출과 일몰의 명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미세먼지가 심해져 뿌옇게 보이기만 하니 아쉽기만 하다.

◆미황사 보고 꼭 들러야 할 ‘달마고도’

‘천년의 세월을 품은 구도의 길’로 개통된 ‘달마고도(達磨古道)’는 달마산(489m) 중턱 7부 능선에 조성된 길로 미황사에서 출발해 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는 약 18㎞ 거리의 코스다. 길은 총 4구간의 테마 길로 나뉘어 있다. 달마산과 미황사의 12 암자를 연결하는 순례코스이자 옛길로 최고의 ‘남도 명품 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달마고도가 다른 둘레길과는 달리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원시적인 맨손공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노면 경계 쌓기나 길 다듬기 등 전 구간의 모든 과정을 외부 자재·장비 없이 9개월 동안 순수인력 1만여명으로 시공했다. 구간별로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누구나 걷고 싶은 만큼 산책하듯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달마고도. 전국각지에서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해남 미황사와 달마고도를 찾아 진정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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