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오늘도 영사기에 추억을 돌린다… 인파 그리운 동두천 동광극장
[쉼표] 오늘도 영사기에 추억을 돌린다… 인파 그리운 동두천 동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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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인 동광극장에는 오늘도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동광극장의 외관. ⓒ천지일보 2019.3.15
국내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인 동광극장에는 오늘도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동광극장의 외관. ⓒ천지일보 2019.3.15

동두천 동광극장‧외국인관광특구
미군기지 이전으로 지역 경기 하락
특색있지만 찾는 사람은 드물어
번화했던 추억을 먹고 사는 이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옛날에는 외국인도 영화보러 많이 왔지. 그런데 지금은 미군이 평택으로 가니까 이제는 폐허 같이 돼버렸죠. 이미지만 미군기지 동두천시이지, 이젠 다 죽어버렸어요. 이곳에 계속 있다 보니까 쇠퇴하는 게 눈에 보여요. 하다 못해 지금 평택은 ‘뜨는 태양’이라고 하는데, 여긴 말이 시내지 앞에 사람도 잘 안다녀요. 신명나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니 안타깝죠.”

국내 유일한 단관극장인 동광극장을 32년째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역 일대서 운영하고 있는 고재서(63) 대표는 오늘도 추억을 돌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일명 ‘와칸다 극장’으로 불리며 지난해 한창 SNS를 뜨겁게 달궜던 ‘동광극장’의 대표다. 지난해 4월 갑작스레 블로거 등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이색 극장이었다. 주요 매체에서 동광극장을 조명하면서 인기몰이를 할 것 같았지만, 고 대표는 1년이 다 돼 가지만 사실상 많은 손님들이 찾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인적이 메말라가는 동두천의 현재 모습을 설명하며 그저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찾는 이가 드물고 손님이 적어도 고 대표는 극장 문을 닫지 않고 매일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2009년까지 영사실에서 직접 사용했던 필름 영사기도 가끔 돌려준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고 대표는 영사기에 필름을 끼우고, 영화가 상영될 때 영사실에서 들려왔을 기계음을 만들어내줬다. ‘탁. 촤르륵’ 필름이 공중으로 날렸다. 중간에 필름이 끊긴 것. 필름을 감아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돌려서 필름이 돌아가는 속도를 견디지 못했다. 고 대표는 끊겨버린 필름의 중간을 잇지 않고 떼어냈다.

고재서 대표가 지난 2009년까지 사용했던 영사기를 로비에 놓고 작동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5
고재서 대표가 지난 2009년까지 사용했던 영사기를 로비에 놓고 작동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5

“이렇게 떼어내면 옛날에는 이 필름의 분량만큼 화면이 날라갔죠. 예전에 필름 영화를 볼 때는 관객들은 영화가 잘 나오다가 중간에 장면이 훅 바뀌는, 그런 경험을 했을 건데 이런 문제 때문에 그런거죠. 영사실에서 기사가 이걸 다시 이어야 그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다 잇고 있나요. 떼어내 버리면 그 장면은 날아가 버리는 거였지요.(웃음)”

어쩐지 옛날 필름 영사기를 다시 돌리는 고 대표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스미는 듯 했다. 이제는 브라운관에서 시대극을 다룰 때나 볼 수 있는 생경한 영사기다. 그냥 창고에 두기가 아까워서 영화관을 찾는 손님들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도록 영화관 로비에 설치했다고 했다. 추억이 된 영사기와 그 추억을 간직한 채 먼 발걸음을 해야 할 손님들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고대표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기자의 생각이었을까.

영사기에 필름을 하나씩 끼우면서 고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영사기를 돌리다가 필름이 끊어져버려 장면이 날아가버린 영화처럼, 동두천의 활기찼던 모습들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동광극장의 처지가 시리게 닮았다.

앞자리에 다리를 올리고 관람하도록 마련해놓은 발받이가 독특하다. ⓒ천지일보 2019.3.15
앞자리에 다리를 올리고 관람하도록 마련해놓은 발받이가 독특하다. ⓒ천지일보 2019.3.15

동광극장은 1인당 8000원으로 가격을 매겼고, 특별히 영화 티켓이 구비되지도 않았다. 금액을 결재하고 입장하니 영화 ‘증인’이 상영된다. 큰 극장의 전체 난방은 어려웠다. 봄 기운이 왔어도 스물스물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없애줄 히터가 있는 자리에 짐을 풀고 앉았다. 2층 맨 앞줄에 앉아 편하게 다리를 올리고 앉으라는 안내 문구대로 다리를 올려본다. 배터리가 없다고 빨간 기운을 뿜는 스마트폰도 바로 옆에 있는 멀티탭에 충전기를 연결하니 꽤나 만족스럽다. 286석 496㎡(150평) 규모다. 스크린도 꽤 컸다. 기자는 다른 가족 2명과 그 큰 영화관을 전세라도 낸양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편하게 관람했다.

담백하게 툭툭 던지듯 꾸밈 없이 말하는 고 대표를 연상시키듯, 영화도 그 흔한 광고 영상 하나 없이 곧바로 본 영상으로 돌입했다. 손을 타 반짝거리는 좌석들과, 신식 카펫이 깔리지 않은 옛날 건축물이 갖고 있는 영화관의 운치를 훑어 보던 눈이 스크린으로 집중된다. 암전 되기 전에 봤던 영화관의 모습과 영화의 장면이 퍽이나 어울린다.

동두천 시내 중앙시장이 오후 손님이 거의 없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5
동두천 시내 중앙시장이 오후 손님이 거의 없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천지일보 2019.3.15

영화가 끝나고 나가니 고 대표는 곧바로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손님이 있으면 영화는 쉴틈도 없이 곧바로 상영된다. 혹여나 영화 상영 중 극장을 찾아 기다릴 손님들을 위해 고 대표는 영화관 내부에 수많은 수조들을 설치했다. 갖가지 희귀한 물속 생물들이 손님들의 안광을 받아냈다. 지금은 수입금지가 된 피라니아, 투명한 몸체와 수염이 독특한 글라스 캣 피쉬, 남아프리카산 분홍 개구리, 미니 상어 등 20여 종이 각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극장 한켠에는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등 피규어가 전시됐다. 고 대표의 소소한 취미라고 했다.

고 대표는 동두천시와 연계해 극장에서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등 극장을 계속해서 활용할 계획이다.

영화가 끝나고 인근을 돌아보니 곧바로 중앙시장이 보인다. 고 대표의 설명대로 시장은 활기를 잃었다. 장사를 위해 주민들은 문을 열었지만 찾는 이는 소수였다. 오후 4시 한창 인파로 붐벼야 할 시장이었지만 보기에 무색할 정도로 손님이 드물었다. 보산역 인근에는 외국인 관광특구도 보인다. 그래비티 예술로 거리 온 벽이 꾸며진 관광특구는 2016년 7월 시작된 미군부지 이전으로 화려한 자태와 어울리지 않게 기묘하리만큼 인적이 드물었다. 혼자서 거리를 지나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동두천 시내 외국인관광특화 거리는 오후에도 인적이 드물다. ⓒ천지일보 2019.3.15
동두천 시내 외국인관광특화 거리는 오후에도 인적이 드물다. ⓒ천지일보 2019.3.15
그래비티로 벽이 꾸며진 외국인특화 거리의 모습. 최근에는 곳곳에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천지일보 2019.3.15
그래비티로 벽이 꾸며진 외국인특화 거리의 모습. 최근에는 곳곳에 공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천지일보 2019.3.15

‘한국사람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미국인의 식당 등 인근 식당들은 한때 이곳이 외국인의 거리였다는 것을 알리는 듯 했다. 영어로 뒤덮인 가게들을 지나 한 식당에 들어가 피자를 주문했다. 식당 한쪽 벽면은 미군들의 흔적으로 보이는 외국 지폐 등과 그 위에 기록된 메모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수십년동안 식당을 운영해왔다는 주인도 미군이 떠난 다음 손님이 너무 줄었다며 지역 경제를 우려했다.

동광극장 등 옛추억을 간직한 이색적인 동네가 현대를 벗어나고픈 이들의 쉼표로, 앞으로도 오래 자리하려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이 필요해보인다.

마치 동두천 시내가 외국이라도 되는양 ‘한국사람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미국인의 식당.  ⓒ천지일보 2019.3.15
마치 동두천 시내가 외국이라도 되는양 ‘한국사람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미국인의 식당. ⓒ천지일보 2019.3.15
미군 등 외국인과 동두천 외국인관광특화거리 방문객이 한 식당에 남긴 흔적들. 각 나라의 지폐에 추억이 담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천지일보 2019.3.15
미군 등 외국인과 동두천 외국인관광특화거리 방문객이 한 식당에 남긴 흔적들. 각 나라의 지폐에 추억이 담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천지일보 2019.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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