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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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기원전 218년 4월 한니발은 5만명의 보병과 1만 2000명의 기병 그리고 37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신카르타고를 떠났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기원전 218년 4월 한니발은 5만명의 보병과 1만 2000명의 기병 그리고 37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신카르타고를 떠났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카르타고는 아프리카 북쪽 튀니지에 자리 잡은 도시 국가다. 소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쳤던 페니키아 인들이 기원전 814년에 식민지로 세웠다.

카르타고는 에스파냐와 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의 심장부에 위치해 상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일찍부터 해상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기원전 6세기경에는 “카르타고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지중해의 바다에 손을 담글 수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경 강성해진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손아귀에 넣고 바다로 눈길을 돌리면서 카르타고와 로마의 정면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기원전 264년 로마가 군대를 보내 시칠리아를 점령함으로써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제1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한다. 포에니는 라틴말로 페니키아 인을 뜻한다. 카르타고는 전쟁에서 지면서 시칠리아·사르디니아·코르시카 등의 섬을 로마에게 빼앗겼으며 많은 돈을 물어 주어야 했다.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앞장서 싸웠던 장군이었다. 그는 로마에게 당한 패배의 치욕을 씻으려고 칼을 갈아오고 있었다.

‘카르타고의 원수인 로마를 물리쳐 원수를 갚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해 힘을 길러야 한다.’

이베리아 반도는 지금의 에스파냐다. 하밀카르는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로 쳐들어갔다. 카르타고 군(軍)은 먼저 이베리아 반도 남쪽 지방을 점령한 뒤, 북쪽 지방으로 쳐 올라가 원주민들의 공격을 물리쳤다. 하밀카르는 마침내 이베리아 반도의 모든 땅을 정복했으며, 그곳에 새로운 도시인 ‘신카르타고’를 세웠다. 또한 은·금·구리·철을 캐는 광산을 개발하여 로마에게 물어줄 돈을 마련했다. 신카르타고는 10년도 못 되어 강한 도시 국가가 되었다.

기원전 228년 하밀카르는 원주민 부족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스무 살의 늠름한 젊은이로 자라난 한니발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 편안히 잠드십시오. 신께 맹세한대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반드시 로마를 멸망시키겠습니다.’

한니발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이베리아 반도로 원정을 떠나기 전에 함께 신전에 가서 이런 맹세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내가 커서 카르타고의 원수를 갚겠다.”

하밀카르의 뒤를 이은 것은 하말카르의 사위인 하스드루발이였다. 그는 총독이 되어 신카르타고를 다스렸다. 하지만 하스드루발도 기원전 221년에 누군가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27세의 한니발뿐이었다. 그는 신카르타고의 총독이자 카르타고 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에브로 강의 남쪽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도시 국가인 사군툼이 있었다. 사군툼은 로마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니발은 기원전 219년 사군툼으로 쳐들어갔다. 카르타고 군은 사군툼을 여덟 달 동안 포위한 뒤 끝내 함락시켰다.

로마는 이 소식을 듣고 카르타고에 사신을 보내 항의했다.

“사군툼은 우리 로마와 친한 나라요. 그런데 당신들 멋대로 점령해도 되는 거요? 당신들은 포에니 전쟁에 져서 로마와 조약을 맺을 때 분명 약속하지 않았소? 카르타고의 북쪽 경계는 에브로 강이니 그 위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로마 사신은 카르타고 군을 사군툼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로마 사신은 너무 분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군대를 철수하지 않겠다면 우리 로마와 맞서 보겠다는 거요?”

“못할 것도 없지. 우리에게도 막강한 군대가 있으니까.”

이리하여 카르타고와 로마는 또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이다.

신카르타고의 수도는 항구 도시인 카르타게나였다. 한니발은 이곳에서 전쟁 준비를 하며 지냈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하스드루발(매형과 이름이 같다)을 불러 말했다.

“나는 이제 로마를 쳐부수려고 이탈리아로 쳐들어갈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너는 우리 신카르타고가 들어선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땅을 지키고 있어라.”

한니발은 하스드루발에게 군대를 떼어 주었다.
 

전쟁터에서 코끼리를 처음 본 말들이 놀라서 날뛰는 경우가 많아 기병을 공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전쟁터에서 코끼리를 처음 본 말들이 놀라서 날뛰는 경우가 많아 기병을 공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기원전 218년 4월 드디어 출전 명령을 내렸다. 한니발은 5만명의 보병과 1만 2000명의 기병 그리고 37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신카르타고를 떠났다. 한니발 대군은 행군을 계속하여 피레네 산맥에 이르렀다.

이때 그들은 피레네 산맥에서 피렌 부족과 맞닥뜨렸다. 피렌 부족은 죽을힘을 다해 카르타고 군을 공격했다. 카르타고 군은 피렌 부족을 간신히 물리치긴 했지만 적지 않은 병력을 잃었다. 그렇지만 피레네 산맥을 넘은 뒤에는 싸움이 없었다. 갈리아 남쪽 지방의 부족들이 스스로 항복했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신카르타고를 떠난 지 넉 달 만에 알프스 산맥에 이르렀다. 3000m가 넘는 드높은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한니발은 눈 덮인 봉우리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리는 원수의 나라인 로마를 무찌르려고 먼 길을 떠나왔다. 이제 저 앞에 보이는 산맥을 넘으면 곧바로 로마로 쳐들어갈 수 있다. 병사들이여, 알프스가 제아무리 높고 험하다 해도 겁먹지 말라. 그래 봐야 하늘 아래에 있는 산 아닌가. 우리는 충분히 넘을 수 있다. 다 같이 알프스를 향해 전진하자!”

한니발은 병사들을 격려하고 앞장서서 알프스를 오르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병사들은 눈사태와 싸우며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산을 오른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위들이 굴러 내려왔다.

“위험하다, 피하라!”

그러나 이미 늦었다. 바위들은 병사들을 덮치고 말았다. 카르타고 군을 향해 높은 곳에서 바위를 굴린 것은 켈트 부족이었다. 이들의 공격으로 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한니발은 9일이 지나서야 겨우 산꼭대기에 올랐다. 병사들은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한 뒤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은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 내려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한번 미끄러지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걸핏하면 눈사태가 일어나 많은 병사들이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코끼리들을 거느리고 알프스를 넘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코끼리들은 워낙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동물이기 때문에 낯선 땅을 갈 때는 조심조심 걸음을 옮긴다. 게다가 이 코끼리들을 재촉해 평지도 아닌 얼음 덮인 산을 넘어가야 했으니 코끼리들이나 병사들이나 죽을 고생을 했다.

한니발은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15일 만에 알프스를 넘어 평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신카르타고의 수도인 카르타게나를 떠나 여기에 오기까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남은 병력을 세어 보니 2만여명의 보병과 6천여명의 기병 그리고 코끼리는 여덟 마리뿐이었다. 절반 이상의 병사와 코끼리들이 얼어 죽거나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던 험한 알프스를 넘어왔기 때문이다.

한니발은 이탈리아에 도착해 티치노 강, 트레비아 강, 트라시메노 호수 등의 전투에서 로마 군을 잇따라 무찔렀다. 그리고 기원전 216년 로마의 8만 대군과 맞붙은 그 유명한 칸네 전투에서는 보병 3만 5천명, 기병 1만 7천명을 죽이고 2만명을 포로로 잡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카르타고 군은 갈수록 전력이 약해져 갔다. 오랜 원정과 거듭된 전투로 많은 병사들을 잃은 데다 지칠 대로 지쳐 있기 때문이다.

17년을 끌어왔던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것은 기원전 201년이었다. 그 전해에 로마의 침략을 막아 달라는 카르타고 본국의 요청을 받고 이탈리아를 떠나 카르타고로 간 한니발은, 자마에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과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그는 2만명의 병사를 잃고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기원전 201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강화 조약이 맺어졌다. 그러나 그 조약은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진 카르타고에게는 굴욕적인 것이었다. 신카르타고를 로마에게 넘겨주었을 뿐 아니라, 50년 동안 해마다 200탈렌트를 배상금으로 물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뒤 한니발은 소아시아로 망명하여 로마를 멸망시킬 꿈을 꾸다가, 로마 군대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183년의 일이었다.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코끼리 전투는 기원전 326년 인도 히다스페스강 전투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코끼리 전투는 기원전 326년 인도 히다스페스강 전투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2.28

◆ “코끼리가 전투에 처음 참여한 것은 언제였나요?”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에 중국의 대부분 지역에는 코끼리들이 살았다. 사람들은 상아를 얻기 위해 야생 코끼리들을 사냥했으며, 코끼리들을 길러 전투에 이용했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중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코끼리들을 전투에 참여시켜 많은 코끼리들이 죽었다고 한다.

역사에 최초로 기록된 코끼리 전투는 기원전 326년 인도 히다스페스강 전투였다. 육군 2만명과 기병 3000명을 거느리고 인도 원정을 떠난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의 포루스 왕과 맞붙어 싸우게 되었다. 포루스 왕은 인도 서북부에 있는 펀자브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보병 3만명과 기병 4000명, 전투용 마차 300대와 코끼리 200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적들을 향해 진격하라!”

포루스 왕은 코끼리 부대를 앞세워 먼저 공격했다. 코끼리들은 커다란 발로 알렉산더 군 병사들을 마구 짓밟았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알렉산더 군이 아니었다. 알렉산더의 명령으로 병사들은 코끼리를 모는 인도군 병사들만 골라 활을 쏘아 맞혔다. 그리고 인도 기병들을 코끼리 부대 쪽으로 몰아붙여, 코끼리들이 우왕좌왕하며 인도군 병사들을 짓밟는 사태가 벌어졌다.

알렉산더 대왕이 코끼리 부대를 공격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6년 전에 페르시아의 제후들로부터 코끼리 15마리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코끼리들을 관찰한 결과 코끼리들은 쉽게 놀라고, 공포를 느끼면 자기편 병사들도 마구 짓밟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코끼리들의 그런 습성을 이용해 알렉산더 대왕은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왜 옛날 사람들은 전투에 코끼리를 참여시켰을까? 그것은 코끼리가 발로 적군을 짓밟고 긴 코로 공격할 수 있는 데다, 덩치 큰 코끼리가 적군에게 상당히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코끼리를 처음 본 말들이 놀라서 날뛰는 경우가 많아 기병을 공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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