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당나라 현종, 소년 500명을 두어 싸움닭 수천 마리를 기르다
[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당나라 현종, 소년 500명을 두어 싸움닭 수천 마리를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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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닭싸움은 특별히 훈련시킨 닭들을 싸움붙이는 놀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닭싸움은 특별히 훈련시킨 닭들을 싸움붙이는 놀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닭싸움은 특별히 훈련시킨 닭들을 싸움붙이는 놀이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즐기거나 두 패로 나뉘어 내기를 건다. 닭싸움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다. 기원전 2500년쯤인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 발굴된 도장에는 닭들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나 있어, 고대 인도에서 닭싸움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인도의 닭싸움은 페르시아로 전해졌고, 나중에는 고대 그리스․로마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로 퍼졌다. 고대 로마에 닭싸움이 전해진 것은 기원전 1세기쯤이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좋아했던 닭싸움을 야만적인 놀이라며 경멸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닭싸움에 빠져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투계장으로 몰려들어 내기를 걸었는데, 전 재산을 날리는 경우가 흔했다.

중세 유럽에서 닭싸움을 가장 즐긴 나라는 영국이다. 16세기에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는 닭싸움을 좋아하여 왕실 전용 투계장을 두고 닭싸움을 즐겼다고 한다. 영국에서 닭싸움은 왕족이나 귀족들뿐 아니라 서민들까지 좋아했다. 나중에는 도박으로 피해가 심해져 1849년 닭싸움을 금하게 되었다.

닭싸움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성행했다. 특히 8세기쯤에는 당나라 현종이 닭싸움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황제가 되기 전부터 닭싸움을 즐겼는데,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황궁 좌우에 커다란 닭장을 지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컷 싸움닭 수천 마리를 모아들여 기르기 시작했다.

이 싸움닭들을 돌보는 것은 소년 500명이었다. 이들은 우두머리인 13세 소년 ‘가창’의 지휘를 받으며 싸움닭들을 기르고 훈련시켰다. 가창은 일곱 살에 뽑혔는데, 닭에 관한 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보지 않아도 울음소리만으로 어떤 종류의 닭인지 알았으며, 닭이 병들면 무슨 병이든 척척 고쳤다. 사람들은 그 재주에 탄복하며 가창을 ‘신계동(神鷄童)’이라고 불렀다. 가창 때문에 당나라 장안에는 이런 노래까지 유행했다.

남자로 태어났다고 글만 배울 일이 아니네.
닭싸움도 말타기나 독서 못지않네.
가씨 집안의 13세 소년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네.

사람들이 부러워하여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를 만했다. 가씨 집안은 가창 덕분에 재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아버지도 벼슬을 얻었다.
 

닭싸움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성행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닭싸움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성행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당나라 현종은 태산에 제사를 올리러 갈 때는 반드시 수천 마리의 싸움닭과 소년 300명을 데리고 갔다. 비단옷을 입고 금빛 모자를 쓴 가창이 맨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끌기 때문에 그 행진은 아주 볼만했다.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에는 현종 황제와 신하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투계장에서 닭싸움을 벌였다. 악대의 연주에 맞춰 싸움닭을 거느리고 나타난 가창은, 싸움닭들을 싸움터에 몰아넣고 혈투를 벌이게 했다. 그리하여 닭싸움이 끝나 최후의 승자가 결정되면, 가창은 그 싸움닭을 앞세우고 투계장을 떠나 닭장으로 향했다.

당나라 현종 때에는 관리들뿐 아니라 백성들까지 닭싸움에 열중했다. 그래서 전 재산을 날려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닭싸움이 행해졌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닭싸움이 행해졌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3.15

◆ “우리나라에서도 닭싸움을 즐겨 했다면서요?”

우리나라에서도 옛날부터 전국적으로 닭싸움이 행해졌다. 닭싸움은 닭이 털갈이를 끝내는 봄부터 시작하여 가을까지 이어졌다. 장터나 넓은 마당에 싸움터를 마련하여 닭들끼리 싸움을 붙였다.

여기에 나오는 닭들은 보통 닭이 아니라 인도산 ‘샤모’, 일본산 ‘한두’ 그리고 한두와 토종닭 사이에서 태어난 ‘우두리’ 등의 수탉이었다. 이 닭들은 싸움에 대비해 훈련을 시켰으며 미꾸라지, 뱀, 달걀 등 육식 위주의 먹이를 주었다.

둥근 둥우리 모양으로 만든 지름 4미터, 높이 40센티미터의 공간이 싸움터였다. 닭들은 이 안에서 맞붙어 싸웠는데, 주둥이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할퀴었다.

싸움에도 규칙이 있어 싸우는 도중에 주저앉거나 부리가 땅에 닿으면 진 것으로 인정했다. 만약에 한 시간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몸무게가 가벼운 쪽이 이긴 것으로 했다. 30분 싸우고 5분 쉬었으며, 쉬는 닭에게 물을 먹였다.

구경꾼들은 두 패로 나뉘어 돈을 걸었다. 그래서 승부가 나면 이긴 닭에게 60퍼센트, 진 닭에게 40퍼센트의 돈을 주었다. 싸움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죽은 닭을 요리하여 술안주를 만든 뒤 술판을 벌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닭싸움이 8․15 광복 전까지 전국에서 행해져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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