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황교안 이후가 더 문제다
[정치평론] 황교안 이후가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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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예상대로 자유한국당이 황교안 전 총리를 새 당대표로 선출했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인사가 입당 43일 만에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자유한국당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것도 공안검사 출신에 더해서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과 탄핵에 어떤 방식이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차기 총선까지 진두지휘 할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누구든, 어떤 경력에 어떤 입장을 취하든 그것은 자유한국당 당원들의 선택이다. 따라서 그 또한 민주주의적 절차이기에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비상대책위’까지 꾸린 자유한국당의 긴 고민의 끝이 왜 황교안으로 마무리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황교안의 자유한국당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국정치의 오늘과 내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도로 친박당으로

인류의 역사는 혁명과 반동의 역사로 가득하다. 혁명이 성공하고 더 진화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는 경우도 많지만 더러는 거꾸로 혁명이 실패하고 ‘반동의 역사’로 이어졌던 경우도 적지 않다. 혁명의 역사를 상징하는 ‘프랑스 혁명’도 그랬다. 가깝게는 2010년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이 중동 민주화의 꽃을 피웠지만 이웃 국가들의 ‘혁명’은 대부분 ‘반동’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 반동의 내밀한 원인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결국 그들의 현실은 전쟁과 테러, 죽음과 절망이 일상이 돼버린 ‘반동의 역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기야 혁명의 좌절과 반동의 역습은 우리 현대정치에서도 낯선 개념이 아니다. 조선말기의 피폐한 민생과 무능한 조정에 혁명적 분노를 표출했던 동학혁명은 외세까지 끌어들인 반혁명적 진압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타락에 반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던 4.19혁명도 정권퇴진은 이뤄냈지만 군사쿠데타에 의한 반동의 역습을 피하지 못했다.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등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기득권 세력에 의한 반동의 역습은 사회적 변혁과 변화의 고비마다 발목을 잡거나 테러를 가했다. 한국 현대정치사에 켜켜이 쌓인 분노와 좌절, 고통과 통한의 눈물이 그것이다.

이번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압도한 키워드도 결국 ‘반동의 역습’에 다름 아니다. ‘촛불민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자 그동안 숨죽여 있던 ‘친박세력’, 그중에서도 강경 보수그룹이 드디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마침 지금의 타이밍도 그들에겐 봄날 같다고 본 것이다. 이른바 ‘적폐청산’은 이미 수명을 다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도 예전 같지가 않다. 따라서 ‘태극기’를 들고 나와도 별로 긴장할 것도, 두렵거나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는 정세가 조성됐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바로 이런 시점에 새 당대표를 선출하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열린 것이다. 마침 김병준 비대위가 추진한 당 혁신은 용두사미 격이 되고 말았고 마치 그 역습처럼 황교안 전 총리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덩달아 김진태, 김순례 의원까지 전면에 나서게 되자 ‘태극기’는 비로소 물결을 이룰 만큼 세가 커져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자유한국당 혁신 작업까지 지지부진 했던 그 틈새를 헤집고 강성 보수그룹에 의한 반동의 역습이 본격화 된 셈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김진태가 아니고 왜 황교안이냐고. 답은 간명하다. 전당대회 현장의 ‘태극기’가 김진태의 것이었다면 당원들이 가슴에 품었던 ‘태극기’는 황교안의 것이었다. 게다가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 염두에 둔다면‘열혈 김진태 지지자’라고 하더라도 어쩌면 황교안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황 후보에게 전략적인 투표를 했을 가능성도 높다. 황교안 대표가 얻은 50% 득표율의 비밀이 거기에 있다.

이런 이유로 황교안 대표의 자유한국당은 그 탄생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 ‘친박세력 청산’을 핵심으로 삼았던 당 혁신작업이 좌초되면서 그에 따른 반동의 역습이 빚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교안 대표가 친박당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더라도 그만큼 더 ‘친박의 늪’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황교안 대표가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마저 스스로 허물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운명적으로 ‘도로 친박당’은 그렇게 세팅된 것이다.

그렇다면 황교안 대표는 지금까지 보다도 앞으로가 더 문제다. 친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점이 내적 요인이라면 설상가상으로 국민의 냉소적 시선이 팽배한 것은 그 외적 요인이다. 게다가 주체적 요인으로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공안검사와 박근혜 정부에서의 법무장관, 국무총리로 연결되는 그의 이력으로 볼 때 이미 과거 독재정권 시대의 안목으로 무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민생의 고단함을 풀어내고 함께 꿈꿔야 할 미래를 설계할 정치적 상상력과 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불행하지만 황교안 이후의 우리 정치권은 더 자극적이고 소모적이며 반동적인 언행들이 난무할 것이다. 제1야당의 급격한 체질변화가 불러올 후유증이다. 드디어 물을 만난 듯 자유한국당 안팎을 주름잡을 강성 보수세력의 언행은 한국정치를 다시 과거로 돌려놓기 일쑤일 것이다. 절망이요 통한이다.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황교안 대표가 내년 총선을 준비할 수 있을까. 국민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희망을 찾기는 어렵다. 선거 승패의 문제보다 당장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수도권 중도신당론’이 어떻게 진화할지, 오히려 그쪽에 시선이 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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