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브렉시트, 영국의 정치지형 변화로 이어질까
[정치평론] 브렉시트, 영국의 정치지형 변화로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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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대영제국(Great Kingdom of Britain). 그들에게는 국부(國富)와 자존심으로 가득 찼던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렸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영광’으로 기억되는 그 역사에 ‘피눈물’이 들어설 공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시대는 단지 침략의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문화 그리고 정의와 도덕까지 통째로 그들의 눈으로 리세팅 해버렸다. 많은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지금도 진행형인 통한의 역사다.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이 증기기관을 발명해 해양과 대륙으로 ‘영국의 힘’을 내뿜은 지 벌써 200년이 지났다. 그 새 런던 하늘을 뒤덮었던 패권국가의 깃발은 미국 보스턴(Boston)을 거쳐 이제 태평양을 건너고 있다. 중국 상하이가 시선을 끄는 이유이다. 물론 서울도, 도쿄도 이에 뒤질세라 ‘거대한 꿈’을 설계하고 있다. 아무튼 과거 제국주의 시대 대영제국의 영광은 이제 역사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됐다. 그들이 장악했던 패권이 대서양을 건너고 벌써 태평양까지 건너는 마당에 무슨 ‘대영제국’ 운운할 수 있겠는가. 미몽이라면 빨리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옳다.

브렉시트는 무능 정치의 압축판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브렉시트 시한은 3월 29일까지이다. 딱 5주 남았다. 그러나 메이(Theresa May) 총리의 리더십은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고 여야 모두 소모적인 공방전과 무기력에 빠져있다. 자칫 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 아니냐(No Deal Brexit)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영국 국민의 심정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며 정치권을 향한 극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일 집권 보수당 의원 3명이 탈당했다. 앞서 제1야당인 노동당을 탈당한 8명을 포함하면 모두 11명이 탈당한 셈이다. 탈당한 이들은 길을 잃은 브렉시트 해법을 찾기 위해 ‘중도그룹’을 형성한 뒤 보수당과 노동당이라는 두 거대 정당을 압박하고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치지형으로 볼 때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도그룹을 중심으로 브렉시트 반대론이 더 확산될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국민투표 얘기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보수당의 강한 반대로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영국이 현재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브렉시트에 대한 두 번째 국민투표를 실시하거나 또는 조기 총선으로 간다면 어떤 변화를 예상할 수 있을까. 기성정치에 대한 영국 국민의 불만과 분노가 극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지형’이 형성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오스트리아 등의 경우처럼 기존 정당을 위협하는 ‘새로운 정당’이 부상해서 영국의 기득권 정당체제를 흔들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영국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지형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이다. 애초 브렉시트를 거론했던 국민적 정서도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기억이 컸다. 유럽연합 가운데 ‘원 오브 뎀’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독일과 프랑스에 휘둘리다 보니 옛날이 그리웠던 것이다. 과거 ‘고립주의’의 행복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돋아났던 배경이라 하겠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그들에게 새로운 정치지형 또는 기득권 정치를 종식시키는 정치변동 같은 얘기는 낯설고 멀리 있을 뿐이다.

다음으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선거제도이다. 영국도 우리처럼 소선거구제를 채택해서 승자독식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한다. 당연히 거대 양당이 유리하며 신생정당이나 제3정당은 진입조차 하기 어렵게 돼 있다. 대처(M. Thatcher) 정부 시절이던 1981년 당시 4명의 의원들이 노동당을 탈당해서 중도 성향의 사회민주당을 창당했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당시 그들도 “영국 정치의 낡은 틀을 깨겠다”고 했지만 반대로 그들이 깨졌다. 결과적으로 노동당 지지층의 분열을 촉발시킴으로써 대처 정부의 승리를 돕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꿈쩍 않는 선거제도는 영국의 기득권 정치를 지켜내는 버팀목이 된 지 오래이다.

브렉시트 문제에 괴로워하고 메이 정부에 실망하고 의회정치의 무능에 절망하면서 특히 영국정치에 분노하는 국민들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도 절대 다수의 여야 의원들이 꿈쩍 않는 것은 곧 꿈쩍 않는 선거제도가 가장 큰 요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당에서 3명, 노동당에서 8명이 탈당해서 중도그룹을 만들었다고 해서 정치지형 변화까지 거론하는 것은 과잉 해석에 다름 아니다. 그래봐야 ‘기껏’ 11명일 뿐이다.

브렉시트 문제는 영국정치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자칫 과거 잉글랜드 시절의 작은 섬나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아일랜드 통일과 스코틀랜드 독립이 현실화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의 현실은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일정을 연기하든 재협상을 하든 아니면 의회를 해산하든 ‘무능 정치’라는 비판은 거부할 수 없다. 과거의 영광과 자존심이 들어설 공간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기술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공(功)이다. 반대로 기회를 위기로 만드는 것도 정치의 과(過)이다. 결국 한 나라의 미래는 ‘정치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메이 총리의 영국, 최근의 정치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늪으로 빠져들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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