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됐다. 예상을 뛰어넘은 판결이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 혐의의 내용이 재판부에 의해 대부분 인정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충격은 엄청나다. 박근혜 정부의 ‘댓글조작’에 분노한 민심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였는데, 그들도 지난 대선 때 댓글조작을 벌였다니 어찌 그 충격이 크지 않겠는가.

재판부는 허익범 특검이 기소한 거의 모든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핵심은 김경수 경남지사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이 ‘공모’해 저지른 ‘선거범죄’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현직 지사까지 구속시켜야 할 만큼의 ‘중대한’ 선거범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안은 당분간 지난 대선의 공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 문제까지 비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야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도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특히 드루킹과 ‘공모’했다는 김경수 지사가 누구던가. 문재인 대통령의 ‘황태자’라는 말까지 듣던 최측근 인사가 아니던가. 더욱이 여권내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될 만큼 문재인 대통령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 때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당연히 지난 대선의 ‘공정성’ 문제는 결정적인 상처가 나버린 셈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분명 김경수 지사의 구속은 엄청난 사건이다. 특히 대통령 최측근이 여론조작을 공모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짓밟는 중대한 범죄행위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추운 겨울날 광화문광장의 촛불을 기억하고 있다면 더는 변명할 필요도 없다. 법률적 문제는 그대로 가더라도 열 번이고 백번이고 고개를 숙이고 또 사죄할 문제다.

그러나 김 지사 측을 비롯해 여권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메시지가 약하면 메신저를 때려라”는 말대로 여론조작은 딱히 할 말이 없으니 이를 유죄로 판결한 메신저 즉 해당 판사를 향해 온갖 비난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사법농단의 정점에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비서실에 근무했다는 경력까지 문제 삼으면서 ‘적폐 판사’로 몰고 있는 것이다. 이젠 집권당인 민주당까지 그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필귀정’,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적폐판사’로 모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앞으로 항소심을 맡을 판사는 ‘적폐’로 몰리지 않기 위해 벌써부터 마음의 자세를 갖춰야 할 지경이다. 1심 판결을 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는지 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엄정한 상황에서는 야당 특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목소리가 매우 중요하다. 여론조작에 분노한 민심을 끌어안고 사법부 판결마저 적폐로 모는 집권세력을 향해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 문제와 그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낱낱이 폭로하고 정국의 주도권 장악을 통해 ‘대안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정치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정치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지금 바쁘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주요 책임자였던 황교안 전 총리가 당권 도전에 나서더니 지난 지방선거 참패의 주역인 홍준표 전 대표마저 다시 대표가 되겠다고 나섰다. 혹여 당대표를 잘못 뽑으면 배가 뒤집히지는 않을지, 가다가 침몰하지는 않을지 또는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지 하는 그런 고민은 오히려 사치에 불과해 보인다. 마치 주인 없는 배처럼 누구든 키만 잡으면 된다는 식이다.

이제 한 달 뒤 자유한국당 새 대표가 선출될 것이다. 다수의 예상대로 황교안 전 총리가 당선됐다고 가정해 보자. 황교안의 자유한국당에서 김경수 지사의 여론조작 문제를 시비할 수 있겠는가. 여론조작을 넘어 국정농단으로 탄핵까지 당했던 박근혜 정부서 법무장관과 총리를 역임했던 사람이 문재인 정부를 향해 무슨 비난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담론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과 ‘상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 발언이 옳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겠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냉소와 질타가 더 쏟아질 것이다. 야당의 비극이요 더 본질적으로는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물론 야당에는 바른미래당이 있다. 김경수 지사의 구속사태에 대해 교섭단체 가운데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다. 민주주의와 부정선거를 운운하는 뻔뻔한 자유한국당을 향해, ‘적폐판사’를 언급하는 오만한 민주당을 향해 천둥 같은 국민의 분노를 대변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힘이 약하다. 스스로 버텨내기도 힘겨워 보인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거대 양당’과 대응하기에는 외롭고 또 외롭다. 여론의 뒷받침도 거의 없다. 이 또한 한국정당정치의 현실이며 동시에 비극이다.

김경수 지사의 여론조작 사건은 분명 민주주의의 근간을 짓밟은 중대한 선거범죄이다.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도 치명상을 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압도할만한 대안정당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일찌감치 ‘변화와 혁신’을 통해 더 단단하게 거듭났다면 지금의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다. ‘도로 친박당’으로 돌아가는 듯한 제1야당의 행보를 볼 때 ‘김경수 지사의 건’은 조만간 다시 수면 아래로 묻히고 말 것이다. 더욱이 아직 항소심이 남아있다.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무능한 야당은 그 무능한 만큼 민폐만 끼치고 있다. ‘야당의 시간’은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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