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국민(國民), 시민(市民), 그리고 인민(人民)
[통일칼럼] 국민(國民), 시민(市民), 그리고 인민(人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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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자유전선 준비위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반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중요하면서도 쉽게 간과하기가 일쑤다. 위의 제목에 언급된 용어들을 보고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되겠지만, 대개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높은(?)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 등으로 사회 전 분야를 예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북한 공산세습왕조나 그들을 추종하는 종북세력들이 세뇌시키듯 되풀이하는 민족주의, 우리민족끼리라는 용어와 의미를 그저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다.

글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국민(國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시민(市民)은 도시의 구성원이고, 거기에 인민(人民)은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으로 정의될 수 있다. 여기에 정치학적인 의미를 덧붙인다면, 국민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동의에 의해 성립된 보편적 개념이며, 시민은 각성된 개인으로 특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완전하고도 평등하게 향유하는 개별 구성원일 것이며, 인민은 무엇에 구속되지 않은 원래의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지만,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개인은 배제한 채 전체에 귀속되는 개인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산권 국가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와 같은 북한인권운동가나 자유전사들은 북한사람들을 주민(住民)이라고 부른다. 그 땅에서 태어나 그저 거기에 살고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것도 공산세습왕조의 노예로 말이다. 노예(奴隸)는 말 그대로 ‘남의 소유물로 되어 부림을 당하는 사람. 모든 권리와 생산 수단을 빼앗기고, 물건처럼 사고 팔리던 노예제 사회의 피지배 계급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임에도 사람이 아닌 존재가 바로 노예다. 앞서 생산수단을 빼앗긴다고 한 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에는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핵심으로 명시돼 있기에, 결국 전체주의 체제는 노예사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북한주민을 노예로 칭하는 이유는 자유(自由)가 없기 때문이며, 국민이나 시민과 같이 국적을 버리거나 바꿀 권리조차 없는 까닭이다. 그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라는 것이 목숨을 걸고 거주하는 북한 땅을 벗어나 탈북함으로써 비로소 국민이 되거나 시민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뿐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신성한 자유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돼 공기처럼 느끼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공기가 오염되거나 없어져봐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뿐인 목숨을 건 탈출로 자유의지를 대변하는 북한주민들에게 크나큰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지 않을까.

평소 존경해마지않는 혜사(蕙史) 노재봉 전 국무총리께서는 자신의 제자그룹과 함께 발간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에 즈음하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북한 공산 전체주의의 체제에 갇힌 민족의 자유박탈 상태를 해방하기 위한 표현이 ‘북진통일론’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유의 방파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왜 방파제에 머물러야 되느냐, 우리는 자유의 파도가 되어 평양을 들이칠 것이다’라고 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자유의 방파제는커녕 역사의 반동인 북한공산체제에 굴종하는 마당에, 태풍을 만들어내는 나비의 작은 날개짓을 통해 38선 이남에서 멈춰선 자유전선의 자랑스러운 가치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하는 파도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단순히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꿈이 아니라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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