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자유전선 준비위원 

 

최근 북한을 다녀온 종교단체 관계자는 비공개모임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했었다. 북한 방문자의 대부분이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방북하는 인사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 희망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북한을 알고 그 속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북한 지하교인들에 대한 자유세계의 신앙인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일지를 고민했다는 고백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우선 중국을 거쳐 들어간 북한의 평양은 새롭게 단장한 공항청사와 함께 여명거리라는 마천루가 즐비하게 서있었고,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눈에 띄게 늘어난 차량들과 인파들로 뭔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첫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진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떨칠 수 없었던 의구심은, 대부분의 건물이 영화세트장처럼 급조된 분위기였고, 억지로 보여주려는 듯 일상적인 풍요로움 속에서나 나올법한 여유나 생동감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혁명의 수도라는 평양에서도 1주일에 한 번씩 무료급식이라는 것이 생겼다는데, 이것을 남한의 종교단체들이 맡아줬으면 했다는 것이다. 무료급식이야 날마다 봉사하고 있는 게 우리 종교단체들의 활동인데 무엇이 문제겠냐마는, 참으로 걱정이었던 것은 1990년대 수백만의 북한주민들이 아사(餓死)했던 고난의 행군 시절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는데, 정작 북한당국은 1주일에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게 하면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그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짐짓 태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아찔했다고 한다.

평양에서의 압권은 다음의 일인데, 대로변을 벗어난 저쪽 너머 담벼락으로 어린아이 한명이 빼꼼 쳐다보길래 그쪽으로 다가갔더니만, 같은 또래아이들이 소복히 모여 있어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사탕을 꺼내 나눠주면서 안쓰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잠시 뒤 일행을 따라다니던 보위부원이 불러 세우고는 뭔가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면서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는 것이었다. 땅바닥에 흐트러진 봉지 속에서 나온 것은 조금 전 아이들에게 나눠줬던 사탕들이었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 것은 아이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을 거 같은 사탕까지도 모조리 빼앗아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을 보고선, ‘아 이곳이 바로 지옥이구나’ 하며 아연실색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사실을 접하는 일부의 종교인들이 변함없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인 세상이 요즘이다. 상식적으로 보이는 종교인들조차 북한이라는 곳을 다녀오기라도 하면, 마치 자신이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고난의 지도자라도 된 것 인양, 극단적 민족주의에 젖어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며, 북한 핵위기나 인권문제로 파생된 국제사회와의 관계에는 관심조차 없고, 심지어 우리 사회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의 요소에도 냉정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냉혹한 종교 환경, 파괴된 신앙 공동체, 암흑 가운데 살아가는 지하신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인의 자세일까.

참 신앙인은, 입에 넣은 사탕조차 빼앗겨 서러워 울부짖어도 누구 하나 도움 청할 길 없는 거리의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참 신앙인은, 우리민족끼리라는 극단적이고 낭만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북녘땅에 태어난 이유하나만으로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야만 하는 북한주민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참 신앙인은, 종교란 아편이라는 사악한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으로 무너져 내린 신앙 공동체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기 위해 순교를 결심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신앙인에게 있어 기도는 일이고 일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이리라.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