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21일 한미 양국은 워킹그룹회의를 갖고 26일로 계획된 남북 철도·도로연결 착공식에 대해 대북제재 면제를 결정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의약품 지원 문제도 풀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국 언론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새해 들어 오래지 않아 열리기 바란다”고 말했다. 교착상태인 북-미 대화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북한을 향해 적극적으로 대화에 응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 이행 이전에는 제재 완화·해제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은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려 하고 있다.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1일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은 제재를 완화할 의향이 없지만 북-미 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많은 조치들을 찾아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 외에 연락사무소 개설 등의 제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지난 11월 초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뉴욕 방문을 취소한 이래 미국과의 대화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는 북한은 미국이 보이고 있는 유연성이 현 국면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도의 양보임을 깨달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내 업적 달성을 위해 북-미 대화에 적극적이지만 미 의회와 정통 외교관들, 전문가 집단은 북한의 비핵화 이행 이전의 제재 완화를 결코 용납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미국이 유연성을 보이는 국면에 냉철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과속하면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할 동력은 떨어지고 한미 공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남북 철도·도로연결 착공식은 문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다음 날인 1일 전용기내 기자간담회에서 “착공이 아니라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착수식”이라고 규정했듯이 철저히 상징적인 행사에 그쳐야 한다. 실제 철도·도로연결 공사의 시작은 북한이 비핵화 이행에 나서 제재가 완화돼야만 가능하다.  

청와대는 어제 올 한해 외교안보를 자평하면서 “비핵화 프로세스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으며 북한도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고 공언했지만 북한은 추가 핵개발 중지가 아닌 보유 핵무기의 포기 결심을 증명할 아무런 조치도 취한 바 없다. 지금은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한미 공조를 토대로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해야 할 때다. 한반도의 운명을 쥐고 있는 ‘핵’은 역시 북한 비핵화다. 이 문제 해결에 따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도 있고, 전쟁 분위기가 재현되거나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결론 날지는 예측 불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도 내년은 체제 생존과 연관된 중요한 해다. 

북한은 이미 2년째 경제제재를 받아 체제의 재생산력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시켜 체제를 지속하려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와 한국의 지원이 필수다. 미국은 민주당의 하원 장악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더 커질 전망이다. 탄핵 부담까지 안고 있는 그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선 일정으로 볼 때 북핵 협상 한계시점을 2020년 1월까지로 판단하고 있다.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가 예상해 볼 수 있는 내년 북핵 시나리오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북한 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수용하는 경우다. 국제사회의 전통적인 비핵화 수순은 ‘신고→검증→폐기’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과 고위급회담을 취소하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도 만나지 않고 있다. 북한에 불리한 실무협상을 피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이 핵능력을 중대한 군사·외교 자산으로 여기는 데다 핵전략상 모호성도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도 북한이 핵 신고와 검증에 직면했을 때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거부하는 바람에 7차례나 핵협상이 깨졌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전격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시나리오의 두 번째는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다시 압박하면서 북한이 도발하고,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원칙적 합의를 이루지만,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못할 경우다. 애매모호한 ‘반쪽 비핵화’ 합의다. 미국은 북 비핵화 전에는 대북제재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게 기본입장이다. 그러나 탄핵과 대선 압박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완화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번에 미국의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에 와 미국인의 인도적 북한방문을 허용하는 등 몇 가지 점을 제시한 것은 일종의 북한에게 던져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워싱턴에서는 북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옵션이 군사적 선택 외 바닥이 드러났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바로 이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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