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窓] 밥 돌 前상원의원의 왼손 거수경례
[동북아 窓] 밥 돌 前상원의원의 왼손 거수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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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조지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미국 41대 대통령(재임 89~93년)이 1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밥 돌(Bob Dole, 95) 전 상원의원이 미 의회 중앙홀에 안치된 오랜 친구이자 한때의 경쟁자였던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수많은 조문객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돌은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킨 뒤 가까스로 떨리는 왼손으로 거수경례를 했다. 두 사람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해 국민들로부터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아 왔고, 198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사이였다. 

부시는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공격 당시 필립스고교 학생이었고, 이듬해 고교를 졸업 한 후 예일대에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에서 해군 소위로 입대했다. 그는 미 해군 항공모함의 전투기 조종사로서 일본군함을 공격하던 중 1944년 9월 일본군의 대공포 공격을 받고 해상에 추락하는 과정에서 낙하산으로 탈출, 해상에서 4시간 동안 표류하다 마침 인근을 지나던 미 해군 잠수함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됐다. 부시는 당시 입은 부상으로 퍼플하트훈장(Purple Heart,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을 수상했고, 1945년 중위로 명예 전역했다. 

한편 돌은 2차 대전 당시인 1945년 4월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 소대장으로써 독일군 기관총 진지를 돌격하는 과정에서 무전병이 적탄에 쓰러지자 단독으로 그를 구출하다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그 부상으로 그는 본국의 후송병원으로 이송됐고, 퍼플하트훈장을 수여받았다. 지금도 그의 오른손은 거의 마비상태이고, 왼손으로 겨우 거수경례 시늉을 낼 수 있을 정도이다. 돌은 지난 1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의회의 4분의 3이 참전 용사들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초당적인 대통령이었고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위해 싸운 전우이자 정계 동료인 부시 전 대통령에게 예를 갖춘 밥 돌 전 의원의 모습에 많은 미국 국민들은 큰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부시가 다녔던 미국의 필립스나 영국의 이튼 등 명문 사립고교에서는 대부분 여유 있는 집안 출신의 학생들에게 “너희는 좋은 집안에 태어나 혜택을 받고 성장해 명문고교에 들어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졸업한 뒤 항상 최선을 다하고, 남에게 모범이 되도록 살아야 하며, 특히 국민과 국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훈육한다고 한다. 이들 사립학교 출신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숱한 희생을 치렀고, 학교마다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오지 못한 동문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물이 세워져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 “2000년을 지탱한 로마제국의 저력은 전쟁이 나면 고위층부터 앞장서서 전투에 참여하고, 재산 기부 등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로마는 건국 이래 원로원에서 500년간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감했는데, 이는 계속되는 전쟁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됐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우리나라 헌법도 모든 국민에게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지우고 있다. 그런데도 사회지도층들의 병역미필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부시와 돌의 참전과 희생정신이 보여주듯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하고, 국민들이 군인들을 아껴줄 때 국방은 튼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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