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7월 28일 시작돼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났다. 대전 기간에 군인과 민간인 약 2000만명이 죽고, 2000만명이 부상당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는 속국인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황태자 부부는 거기에서 세르비아 정보부가 밀파한 자객의 흉탄에 맞아 피살됐다. 오스트리아는 그 보복으로 7월 24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7월 28일 러시아도 동원령을 내리고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나섰다.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프랑스 침공을 위해 벨기에를 공격하자,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세르비아 등 연합국들과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터키 등 동맹국들 간에 역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 터진 것이다.

독일은 겉으로는 오스트리아를 돕겠다고 참전했으나, 실제로는 해외진출의 호기를 잡고자 전쟁에 가담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은 산업혁명으로 상품이 넘쳐나자 시장이 넓고 자원이 풍부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주목했다. 또한 이들 지역에 대한 식민지 쟁취를 위해 선진 제국주의 국가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러시아가 손을 잡았고, 후발주자 독일은 발칸 반도에서 게르만족을 한데 묶어 세력을 키우기 위해 오스트리아와 동맹했다. 한편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중립을 선언했으나, 독일이 1915년 잠수함공격으로 영국 호화여객선 루시타니아(Lusitania)호를 격침시켜 동승한 미국인 128명이 죽자, 미국도 이 사건 후 참전했다. 결국 미국은 대전 기간 군수물자를 팔아 엄청난 이윤을 챙기면서 세계적인 강국으로 도약했다. 

지난 11월 11일 파리에서는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을 맞아 세계 70여개국 정상들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배타적 민족주의는 애국심의 정반대이고, 우리의 이익이 제일이고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은 정신적 가치를 잃는 것이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번 중간선거 집회에서 “나는 민족주의자다. 아무것도 나쁜 것은 없다”고 주장했던 발언을 상기시켰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도 “국가적인 자만심과 군사적인 거만함이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일으켜 무분별한 유혈 사태를 유발했다”고 경고했다.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사람들은 조직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국가주의, 닫힌 국경, 무역 폐쇄라는 쉬운 대답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들 세 지도자들의 연설은 다분히 군사·경제적으로 세계를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겨냥한 듯하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 방문 기간 중 다른 정상들과 떨어져 혼자 다니면서 많은 시간을 숙소인 파리의 미국대사관저에서 보냈다. AP통신은 파리에서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외톨이 신세였다(America First meant largely America alone)”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는 “오늘날의 세계질서 연대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가 오히려 세계를 갈라놓은 것 같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식 국가주의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미국만 잘 살겠다는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는 1차 세계대전의 제국주의와 너무도 닮아가고 있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으려면 인류의 분열을 낳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극우 이데올로기에 맞서야 한다고 말한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을 되새겨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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