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감 - 허영자
[마음이 머무는 시] 감 -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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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자(1938~  )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시평]

지난 초여름부터 노랗게 피어 있던 감꽃들이 이제는 모두 떨어지고, 허공에 매달린 감들은 따가운 햇살 속에서 그 속살을 살찌우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맑고 밝게 퍼져가는 가을 햇살. 그 햇살의 밝음과 맑음 속에서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 햇살 받으며 떫고 비린 풋감들이 달콤하게 속살을 익혀가듯이, 사람들 그저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또 철이 드는 것, 이것이 살아가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떫고 비린 감들이 붉고 또 달디 단 감으로 익어가듯,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가면, 젊은 날의 떫고 비린 객기와 치기, 모두 덜어내고 그저 그 누구에게도 달디 단 모습으로 비쳐지는 그런 삶, 그런 모습이 되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객기와 치기라는 젊음의 그 특권을 잃어버린, 그런 사람이 되어 다만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우리네의 삶. 

그리하여 이 가을은 어쩌면 우리들로 하여금 한 걸음 더 성숙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그 여름의 무더위와 폭우와 구름 속 우렁거리던 천둥을 온몸으로 겪어낸, 그래서 더욱 단아한 모습인 성숙으로 들어서는 계절, 이가 바로 가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숙은 어느 의미에서 젊음을 버리는, 아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그 젊음을 포기하는, 그러한 길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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