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각

이문재(1959~  )

소가 제 꼬리를 휘둘러 쇠파리를 쫓는다
물에서 나온 개가 부르르 몸서리치며 물방울을 털어낸다
아토피에 걸린 어린아이가 밤새도록 제 살을 긁는다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자전하는 까닭을 알겠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광욕하는 이유를 알겠다
피부병이 도져서 그러는 것이다
제 살갗에 들러붙은 것들을 떼어버리려는 것이다
태양광의 힘으로 소독하려는 것이다

[시평]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건강한가. 혹 쇠파리 같은 놈들이 하루 종일 들러붙어 지구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는가. 아토피와 같은 고질의 피부병으로 지구는 종일 긁적이며 고통을 겪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마음대로 땅을 파헤치고, 마음대로 오물을 버리고, 마음대로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버리고, 마음대로 석유나 물을 끓어 올리고, 마음대로 일산화탄소를 내뿜고.

그래서 지구는 이곳저곳 병이 들지 않은 곳이 없다. 인간이 사는 곳은 모두 병이 들어 아파하는 지구. 그래서 소가 제 꼬리를 흔들어 쇠파리를 쫓듯, 물에서 나온 개가 부르르 제 몸을 떨어 온몸의 물기를 털어내듯이, 아토피에 걸린 아이가 밤새도록 제 살을 긁듯이, 지구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자전을 하며 쇠파리를 쫓아내고, 또 더러운 오물들을 털어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또 지구는 도진 피부병을 고치기 위하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의 몸을 돌려가며 일광욕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엾은 지구. 오늘도 부르르 떨며 무서운 속도로 자전을 하며, 쇠파리를, 근지러운 물기를 털어내고 있구나. 가엾은 지구. 오늘도 어김없이 도지고 도져 이제는 덕지덕지 고름이 잡힌 피부병, 고치기 위하여 온몸 돌려가며 일광욕을 하고 있구나. 가엾은 지구, 지구, 지구.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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