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늙은 식사 - 양문규
[마음이 머무는 시] 늙은 식사 - 양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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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식사

양문규(1960~  )

숭숭 구멍 뚫린 외양간에서
늙은 소 한 마리 여물을 먹는다.
인적 드문 마을의 슬픈 전설
허물어진 담장 위에서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내린다.
한낮의 논배미 출렁이는 산그림자를
되새김질하듯 물 한 대접 없이

우직우직 여물을 먹는다.
어두워지는 때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는 것
따순 햇살 흠뻑 먹은 들녘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우리 아버지 뜨듯한 아랫목에서
벌겋게 밥 비벼 먹는다.

 

[시평]

밥을 먹는다는 행위인 식사(食事)에도 늙고 젊음이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이가 든 사람이 느릿느릿 천천히 잡수는 그 식사가 아마도 ‘늙은 식사’ 아니겠는가. 어린 우리들이 볼 때에는 연세가 많이 들면 저렇게 잡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가 있다. 

나이가 아직 젊거나 어린 사람들은 식욕이 왕성해서 크게 한 수저씩 떠서는 씹기가 바쁘게 입으로 밥이 들어가지만, 연세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은 그렇지를 못함이 일반이다. 마치 외양간에서 소가 천천히 여물을 씹듯이 말이다.

시인은 외양간에 있는 늙은 소가 천천히 여물을 씹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보았던 아버지께서 진지를 자시던 모습을 떠올린다. 한낮의 논배미 출렁이는 산 그림자를 되새김질하듯, 물 한 대접 없이 우직우직 여물을 먹는 그 소 마냥, 뜨듯한 아랫목에서 벌겋게 밥 비벼 천천히 잡수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 

따순 햇살 흠뻑 먹은 그 들녘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은, 그런 날. 아버지, 이제는 그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옛날의 아버지 마냥 느릿느릿 밥을 먹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문득 그 아버지 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이승에서 만나 뵐 수 없는 아버지, 아버지의 천천히 잡숩는 그 ‘늙은 식사’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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