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제서림벽(題西林壁)
[고전 속 정치이야기] 제서림벽(題西林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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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만년의 유방은 이성의 제후들을 잇달아 죽이고 유씨들을 번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중앙정부에서는 점차 외척인 여씨들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여후는 유방의 조강지처였고, 여씨 일족이 처음부터 유방과 함께 공을 세웠던 것도 사실이다. 여씨는 유방이 늙어서 중병에 걸린 것을 기회로 점차 조정의 요직을 차지했다. 대장군 번쾌는 여후의 여동생 여수와 결혼한 유방의 동서였다. 조정에서는 벽양후 심기식이 여씨를 위한 여러 가지 계책을 내놓고 있었다. 여씨가 유씨의 천하를 바꾸려는 조짐이 곳곳에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평은 유방으로부터 여씨와 가까운 번쾌를 죽이라는 밀명을 받았다. 그러나 번쾌를 죽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평 자신의 정치적 미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평은 교묘했다. 그는 일개 문관이었으므로 번쾌와 독대해 그를 속일 수가 있었다. 그 틈에 대장 주발은 일거에 번쾌를 사로잡았다. 번쾌의 병영 바깥에 토대를 쌓고 거기에서 황제의 조서를 전달하면서 그를 사로잡았다. 번쾌와 정면충돌하는 것보다 유방의 면전으로 끌고 가서 직접 대면해 처리하도록 한다면 자신은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나중에 여씨가 세력을 얻는다면 죽이라는 명령에 따르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구실로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급히 장안으로 돌아온 그는 겉으로는 유방의 죽음을 애도하며 통곡했지만, 자신이 경솔하게 번쾌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번쾌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여후와 여수는 안심하고 오히려 진평을 위로했다. 여후가 집권한 후에 진평은 승상이 됐다.

적을 공격하려면 먼저 모략을 꾸며야 한다. 모략은 양동(佯動)으로 가상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것이 중요하다. 적에게 불의의 기습공격을 퍼부으려면 이러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정계의 인물들이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투쟁에서는 허허실실, 진진가가가 도처에서 복잡하게 전개된다. 정치가들은 대부분 ‘가(假)’를 앞세워 자신의 본의를 숨겼다가 갑자기 기습하거나,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사실을 깨닫고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여산은 강서성 구강시의 남쪽에 파양호와 장강을 바라보며 우뚝 솟은 산으로 광산(匡山) 또는 광려(匡廬)라고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주나라 때 광(匡)이라는 성을 지닌 일곱 형제가 오두막을 짓고 이곳에 은거했다고 한다. 여산의 진면목이란 사물의 진상이나 본래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의 소동파(蘇東坡)가 다음과 같은 ‘제서림벽’이라는 시에서 처음 사용했다.

횡간성령측성봉(橫看成嶺側成峰), 원근고저각부동(遠近高低各不同).
부식려산진면목(不識廬山眞面目), 지연신재차산중(只緣身在此山中).
비스듬히 산자락을 보면 그 곁에 또 봉우리가 보이니,
멀고 가까운 곳이나 높고 낮음이 똑같지 않구나.
여산의 진면목은 알 수 없으니,
직접 산중에 사는 수밖에 없겠지.

계책도 이와 같아서 직접 꾸미거나 당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당하고라도 알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자신이 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다. 당대의 조유(趙蕤)가 한 말이다.

“처음에 수줍은 처녀처럼 보이면 적이 경계심을 버리고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다. 나중에 잽싼 토끼처럼 맹공을 퍼붓거나 도망치면 적은 따라오지 못한다.”

정치가의 진면목을 알기는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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