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언론공화(言論公和)
[고전 속 정치이야기] 언론공화(言論公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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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즉위 30년이 된 주여왕(周厲王)은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고 미치광이처럼 오만방자했다. 모든 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리자, 도저히 참지 못한 소공(召公)이 나서서 간언했다. 화가 난 여왕은 위에서 무당을 징발해 비방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무당의 고발에 따라 함부로 처형했다. 비방자들은 줄었고, 제후들은 점차 조정을 찾지 않았다. 즉위 34년이 되자 여왕의 가혹한 정치는 더욱 심해졌다. 누구도 나서서 간언하지 않았고, 길거리에서 만나도 눈빛으로만 의사를 표시했다. 여왕은 소공에게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자랑했다. 소공이 대답했다.

“입을 막았기 때문일 뿐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물이 흐르는 것을 막으려면 도랑을 파야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입을 막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는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물난리를 방지하려면 사람들을 길가에서 피하게 하거나 물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언로를 소통시켜주어 마음 놓고 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천자가 조정을 다스리는 것도 공경대부들이 조정에서 시편을 읊조리며 마음대로 세태를 풍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악사는 민정에 대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태사(太史)는 문헌과 전적을 인용해 귀감이 되는 말을 할 수가 있어야 하며, 태사(太師)는 규범을 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백관은 조정의 득실을 풍자하고, 평민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모두 내뱉을 수가 있어야 하며, 근신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간언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왕과 제후의 친인척들은 공개적으로 비판받아야 잘못을 고칠 수 있으며, 사부(師傅)는 천자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백성의 입은 대지에 산천이 있는 것과 같아서, 재물과 보화와 각종 도구들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기름진 들판과 좋은 농토가 있어야 의복과 먹을 것이 많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마음 놓고 말을 할 수가 있어야 정치의 옳고 그름과 득실이 밝혀집니다. 백성의 속내는 입술을 통해 나옵니다. 잘 들어야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입을 막는다고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여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3년 후에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왕을 공격했다. 여왕은 체(彘)로 도망쳤다. 하, 은, 주 삼대는 여러 씨족들이 공동으로 힙을 합쳐서 국가를 운영했으므로 군주의 권력이 그리 강하지 못했다. 따라서 백성들이 통치권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자유롭게 제시할 수가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후대의 절대군주가 다스렸던 시대에 비해 민주적이었다. 국왕은 이러한 백성들의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심지어 국가정책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지 않으면 폭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왕은 그것을 무시하고 언론을 통제했고, 소공이 백성들의 입을 막는 것은 흐르는 물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는 정치권력을 이용해 고압적인 수단으로 백성들의 입을 막았으므로, 결국은 BC 841년 백성들의 폭동을 만나 주왕실이 급격히 기울어지는 계기를 만들고 말았다. 백성들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발표할 수가 있어야 사회는 오랫동안 건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고 정권도 안정이 된다. 언론의 자유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여왕이 체에서 죽어버리자 소공은 주공단의 후예인 주공과 함께 태자가 성장할 때까지 14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이 시기를 ‘공화(公和)’라고 부른다. 공화정이란 국왕이 없는 상태에서 귀족들이 힘을 모아 국가를 다스렸다는 의미이다. 후대의 공화국이란 용어는 여기에서 유래됐다. 비판세력의 무력화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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