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지솔] 만해 한용운스님 진영.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5
[천지일보=이지솔] 만해 한용운스님 진영.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5

74주기 만해추모 학술회의
“한국 불교 변화시키려 노력”
만해추모의 달 맞아 재조명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저명한 만해스님(한용운, 1879~1944). 그는 시대에 따라 자신의 글을 통해 불교계와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만해스님이 입적한지 74주기를 맞아 그의 생전 활동이 다시금 재조명됐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만해 한용운의 시대인식과 선사상’을 주제로 추모 학술회의를 진행했다.

만해스님에 대한 연구는 한국 불교사 연구에서 원효대사 다음으로 성과가 많다.

동국대 오경후 교수에 따르면 스님은 전통과 근대의 갈림길이라는 변화와 격동기를 살아간 인물이다. 오 교수는 만해스님에 대해 “일본의 침략과 지배, 근대의 영향, 불교계의 현실은 그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었다”며 “그는 일제의 폭압에 당당했고, 근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한국의 전통 불교를 변화시키고자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만해스님은 승려의 입장에서 불교의 개혁을 주장했고, 독립운동가로서 일제에 항거했다. 사회사상가로서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진각대학원 김경집 교수는 만해스님의 시대 인식 변화에 대한 활동을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1910년대 만해스님의 현실인식은 불교의 개혁과 독립운동이었다. 불교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승려 취처(娶妻)를 제안했고, 불교계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과 ‘불교대전(佛敎大典)’을 발간했다.

1920년대 만해스님의 현실인식은 불교와 사회에 대한 가치의 확대였다. 불교에 있어서 문화적 가치에 눈을 떠 역사적인 자료의 수집과 전승에 노력했다.

1930년대 만해스님의 현실인식은 불교와 사회는 둘이 아니라는 심화된 의식이었다. 그는 불교를 개혁할 때 우리 민족의 정신과 생활을 혁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불교 개혁의 시작은 불교와 정치의 분리, 한국 불교 통일기관의 설치, 그리고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불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만해스님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만해스님은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장례는 전통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됐으며, 유해는 망우리 묘지에 안장됐다. 정부는 스님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의 방향을 제시했던 만해스님. 그는 특히 조계종의 선승으로 불교계의 개혁을 외쳤었다. 이러한 만해스님이 현재 각종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조계종의 큰스님들을 보면 뭐라고 했을까. 자정 능력을 상실한 조계종은 6월 만해추모의 달을 맞아 한국 전통의 불교를 되찾으려고 했던 만해스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재단법인 선학원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만해 한용운의 시대인식과 선사상’을 주제로 추모 학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5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재단법인 선학원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선학원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만해홀에서 ‘만해 한용운의 시대인식과 선사상’을 주제로 추모 학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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