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무선통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최근의 세태에서 유선전화는 이제 고루한 물건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전화는 전기의 발명과 더불어 20세기 전·후반에 걸친 최대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의 최초 발명자를 미국의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로 알고 있다. 전화가 왔다는 신호를 수신자에게 알리는 음을 ‘벨’이라 칭하는 것도 전화의 최초 발명자를 기리고 기억하기 위함에서 붙인 용어이다.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벨 연구소(Bell Lab) 또한 위와 같이 ‘벨’이라는 위대한 발명가를 추앙하고 기리기 위해 약 100년 전에 설립한 연구소로, 그간 본 연구소는 수많은 발명과 공학·과학적 혁신 성과를 거둔 바 있으며,조지프 데이비슨과 같은 노벨상 수상자도 다수 배출하는 등 전기, 전자, 통신 등 IT기초과학 분야에 엄청난 기여를 한 바 있다. 우리나라 통신 및 IT분야 기업의 리더들 중 상당수도 바로 본 연구소 출신으로 재계,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화의 발명사례를 보면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그저 안타까운 에피소드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대상에게는 참으로 세기적인 치명적 실수가 있었음을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전화는 벨과 이라이서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에 의해 거의 동시에 발명됐다. 그레이는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1865년부터 전문적인 발명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전화를 발명하게 되는 1870년대에는 이미 전신(Telegraph)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발명가로서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1874년 그는 욕조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소리를 전류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런 착상을 발전시켜서 바이올린 음을 전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바이올린 수신기’를 창안했다. 또한 이러한 발명과정에서 금속진동판 전자기 수신기가 음악전신기, 다중전신, 음성전신 등에 모두 이용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같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그레이는 전화를 발명했고 당시 주 통신수단인 전신 전문가 집단에 이를 선보였으나, 당시 전신 분야 전문가와 통신 관계자들은 이를 단지 흥미로운 창작품일 뿐, 실용적 응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이를 무시했으며, 오히려 그레이에게 하나의 선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전신 모스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다중전신 개발에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무선 기반의 전신을 이용한 당시 세태에서, 비용이 소요되는 케이블 포설 및 원거리 통신이 제한된 유선전화 기술은 다소 받아들이기 곤란했을 수도 있다. 즉, 당시 전문가들은 동 시대의 주요 통신수단이었던 무선 전신에 그레이가 개발한 전화의 기술요소를 접목해 좀 더 개선된 전신기술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두었고 그레이 또한 현실을 반영한 그러한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그레이는 전화에 대한 기본적 창안을 해놓고도 전화 실용화보다는 다수 전문가가 원하는 다중전신 쪽으로 본 기술을 이용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그레이와는 독립적으로 전화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벨이었다. 1876년 2월 14일 두 사람의 운명을 바꾼 날, 그레이는 자신이 발명한 전화 원리에 대한 특허 신청을 위해 특허청을 방문했는데, 바로 그 날 그레이가 특허를 신청한 약 2시간 전 ‘벨’이 이미 특허를 신청했다는 것을 알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두 시간의 차이가 부는 물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발명자로서의 명성도 날려버린 치명적 차이가 돼 버린 것이다. 벨의 전화기는 얇은 가죽을 진동시키는 원리였는데 그레이의 전화기는 얇은 금속을 진동시켜 소리를 전달하는 기술로 벨의 그것보다 오히려 더 우수한 기술임에도 특허 등록을 놓쳐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레이는 이후 벨의 기술도용 가능성을 문제 삼아 특허권을 주장하며 약 12년간 법정공방을 시도했지만 결국 패소했고 가산만 탕진했다. 본 일화는 아주 간발의 차로 엄청난 기회를 놓쳐버린 극적인 사건으로 인구에 자주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이서 그레이라는 잊혀진 그러나 위대한 발명가도 때론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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