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북미회담이 가까워지면서, 헌법 개정 이슈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문제가 많다보니 당장 급하지 않은 헌법 개정 문제는 뒷전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러다보니 야당은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헌법 개정은 국가와 국민의 중요한 문제인 것만은 사실이고, 보다 신중하게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국민의 합의와 동의를 얻어서 추진해야 한다.

1987년 헌법 개정 때 도입된 중요한 기본권보장 중에 하나가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원칙이다. 현행 헌법 제12조 제1항에 들어온 ‘적법한 절차’라는 문구는 국민의 기본권은 절차적으로도 보장돼야 하고, 그 절차는 적법한 절차여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헌법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체포나 구속에 있어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을 이 규정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체포나 구속을 하려면 법이 정한 절차대로 하지 않으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적법절차원칙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인신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원칙이다. 과거 군주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어떤 절차도 없이 국민을 체포하고 구금했으며 재산을 박탈했다. 이를 고치기 위한 첫 문헌은 1215년 영국의 대헌장이다. 대헌장 제39조는 “자유인은 적법한 판결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으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않고”라는 내용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적법절차원칙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수정헌법 제5조는 “누구든지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생명·자유·재산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해 적법절차원칙을 명문화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신체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영미법의 적법절차원칙을 도입했다. 그런데 적법절차원칙 도입 이전에 헌법은 법률에 따라 신체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하여, 실정법 규정이 있을 때만 체포·구속 등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문화하고 있었다. 즉, 법치국가원리에 따라 법에 규정이 있을 때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적법절차원칙을 도입한 것은 절차가 인권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인권보장은 법과 제도에 의해 실현되는데,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려면 절차적 보장도 함께 돼야 한다. 적법절차원칙이 헌법에 도입되면서 행정작용뿐만 아니라 사법작용에서도 적법절차는 인권보호를 위한 핵심적인 판단기준이 됐다. 이렇게 적법절차원칙을 현실에서 직접 실현하는 절차가 소위 미란다원칙이다. 미란다원칙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확립된 원칙인데, 경찰이나 검찰이 범죄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와 변호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미리 알려주어야 하는 원칙이다.

우리나라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체포 또는 구속이유를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그리고 진술거부권의 고지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사법부도 판결을 통해 미란다원칙을 무시한 체포는 정당한 공무집행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절차도 중요하다. 적법절차원칙은 신체의 자유보장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중요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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