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우리나라 민법 제3조를 보면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생명권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생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명권의 주체는 살아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극히 예외적으로 태아에게도 인정하고 있다. 물론 법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도 태아는 살아있는 존재로 보호되고 있다.

오랫동안 태아가 하나의 생명체고 인류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낙태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이 되고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서 임신에 관한 결정권은 여성의 권리라는 주장이 대두됐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에는 임신의 지속 여부는 여성의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태아의 생명권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낙태문제로 법적·윤리적 논쟁을 시작했고, 낙태문제는 법정으로 갔다. 초기에는 낙태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는 것에 국가를 불문하고 일치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여성의 인권이 됐다. 임신과 관련해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었다.

미국은 1960년 이후 여성의 인권의식이 확산되고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1973년 연방대법원은 낙태를 여성의 프라이버시권으로 인정해 허용했다. 그러나 종교계와 의료계를 중심으로 한 낙태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 침해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낙태로 인한 여성건강에 대한 위험성 등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낙태문제는 정치화됐다. 독일은 논란 끝에 12주 이내의 낙태는 허용하고 상담을 받는 경우 의료보험의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유럽의 다수 국가들은 낙태 허용기간을 12~14주로 하고 있으며, 스웨덴은 18주까지 규정하고 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도 14주 이내엔 사유를 불문하고 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 중국은 낙태를 전면 합법화 하면서 낙태 여성의 권리까지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국가인 바티칸과 필리핀, 엘살바도르 등 일부 남미 국가들은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들도 무조건 허용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회적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이는 낙태 상담을 의무화하고 지원책을 마련해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담 후 일정 기간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다. 네덜란드는 임신중절을 허용하지만 상담 후 5일의 숙려기간을 거치는 절차를 위반하면 처벌한다.

현재 많은 국가가 낙태문제를 여성의 인권문제로 접근하는 국제사회 기준에 따라 법을 바꾸고 있다. 이제 여성의 출산 조절로 인구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OECD의 다수 회원국이 낙태를 허용하지만 출산율은 우리나라보다 높다. 유엔도 낙태를 처벌하는 법을 폐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렇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한다. 이 양자 사이에서 현재 우리 헌법재판소는 고심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