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오늘은 5월 15일 제37회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추락할 대로 추락한 교권 탓에 존경과 사랑의 의미가 가신 교사에게 가장 ‘거추장스러운 날’이 됐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학생 대표가 아니면 선생님께 카네이션 한송이조차 드리지 못한다. 모든 교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일반화하는 꼴이다. 이미 스승의 날 본연의 뜻을 되찾기 힘들게 된 세상에서 당사자인 교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굳이 스승의 날을 꼭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기 어렵다면 근로자의 날 같이 교사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교사가 쉬는 ‘교사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는 교사의 청원이 수십 건에 달한다. 교사들은 청원에서 “스승의 날만 되면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보면 특정 직업만 차별적으로 기념일을 정해서 운영하는 것이 옳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 교권 신장과 스승 존중의 풍토를 만들자는 취지가 사라지고 학생도 교사도 부담스러운 날이 됐다. 조퇴하고 학교를 빨리 떠나고 싶은 날이다. 스승의 날에 학생대표만 꽃을 줄 수 있다는 김영란법은 화를 더 돋운다. 어떤 교사가 그 꽃을 받고 싶다고 했는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며 정작 교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촌지나 받는 무능한 교사’라는 인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권침해는 나날이 늘어가고 언론의 교사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 스승의 날은 유래도 불분명하고 정권에 따라 없어졌다 생겼다 했다. 우리 헌법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교사는 교육의 주체로 살아본 적이 없다. ‘교사는 있지만 스승이 없다’는 말로 교사를 조롱한다. 현실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교권존중의 사회적 풍토 조성’을 이유로 포상, 기념식 등의 행사를 한다. 교권은 포상과 행사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교사도 스승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소명의식 투철한 교사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정부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제2조를 개정해 스승의 날을 폐지해 달라!”고 주장한다.

교사들의 주장대로 스승의 날은 충남 강경여중 청소년적십자의 봉사활동에서 유래했다. 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과 퇴직한 스승을 찾아 위로한 것이 계기가 돼 1963년에 5월 26일이 은사의 날로 정해졌다가 1965년에 세종대왕 탄신일(5월 15일)로 변경돼 스승의 날이 됐다. 스승의 날이 생긴 유래부터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또 박정희 정권 때인 1973년에는 부패척결운동에 휘말려 폐지됐다가 전두환 정권인 1982년 부활해서 명맥이 계속 이어지지도 않았다.

국어사전에 보면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으로 정의돼 있다. 교사가 아니어도 스승은 누구나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유독 교사만 스승이라는 거창한 프레임에 가둬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앞서가야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러다 교사의 조그마한 일탈 기사에는 이리 떼 같이 달려들어 물고 뜯고 폄훼하고 조롱한다. 스승이라는 부담스러운 용어 대신 교사라는 전문 직업인으로 대우만 제대로 해줘도 된다. 장래희망으로 교사를 선택한 자녀는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정작 교사는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교사에게 스승의 덕목을 강요하며 옥죄지 말고 부모로서 자신은 올바른 부모였는지도 돌아보자.

5월의 3대 부담스러운 날인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중에서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선물 고민을 안 해도 되는 날로 변해 학부모에겐 다행이다. 이 법 때문에 학생, 졸업생, 학부모가 예의상 사오는 음료수나 커피, 간식도 다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어 교사들은 부담스럽다. 스승의 날을 없앨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청도 난감해한다. 행사를 벌이기도 축소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일선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고만 있다.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행사 대신 현장 체험학습, 수련회, 체육대회 등으로 대치를 해 스승의 날은 이미 유명무실한 존재가 된 게 현실이다. 자율휴업일로 지정한 학교도 많다.

교사들은 오늘도 선생에서 스승에 가까워져 가려고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애써 위로하며 상처 받지 않으려 노력한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스승의 날이 하루빨리 폐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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