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진(晋) 헌공의 부인 여희는 자기 아들 해제를 후계자로 삼기 위해 태자 신생을 모함했다. 

“부친께서는 지난 밤 꿈에 그대의 생모인 제강(齊姜)을 만났다고 합니다. 빨리 제사를 올리십시오. 제사를 지낸 음식을 아버지께 드려야 하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충직하고 성실했던 태자는 곡옥(曲沃)에서 어머니의 제사에 사용했던 술과 고기를 헌공에게 바쳤다. 6일 후 헌공이 사냥터에서 돌아오자 여희는 태자가 가져온 음식에 독을 넣어 헌공에게 주었다. 헌공이 먹으려고 하자, 여희가 말렸다.

“먼 곳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상이 없는지 시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헌공이 술을 땅바닥에 붓자, 땅이 부풀어 올랐다. 헌공이 고기를 개에게 먹였더니 즉사했다. 화가 난 헌공이 신생을 불렀다. 겁이 난 신생은 도망쳤다. 헌공은 태자의 스승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 두원관은 죽기 전에 태자에게 당부했다.

“죽더라도 성정을 바꾸지 않는 것이 강(强)입니다. 성정을 지키면서 부친을 설득하는 것이 효(孝)입니다. 몸을 던져 뜻을 이루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죽더라도 군왕을 잊지 않는 것을 경(敬)이라고 합니다. 자식은 이러한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측근이 태자에게 여희가 독약을 넣은 것을 해명하라고 권했고, 혹자는 다른 나라로 망명하라고 권했지만 태자는 두원관의 당부에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 신생은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 것이 인이고 두 번 다시 곤경에 빠지지 않는 것이 지(智)이며, 죽더라도 도망치지 않는 것이 용(勇)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암시에 스스로 걸려 자살하고 말았다. 사건의 배후에는 후계자 다툼이 있었다. 헌공은 아버지의 애첩 제강을 부인으로 삼아 신생을 낳았다. 이어서 융적 출신 두 여자와의 사이에서 중이와 이오를 낳았다. 나중에 여융의 두 자매를 얻었는데 언니가 해제, 동생이 탁자를 낳았다. 헌공은 아름답고 총명한 여희를 총애하여 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후계자고 삼고 싶었다. 물론 여희도 욕심을 품었다. 헌공은 신생, 중이, 이오를 변경방어라는 명분으로 축출하고 해제와 탁자는 도성에 남겼다. 태자가 대부 이극(里克)에게 결국 자신이 폐위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극이 말했다.

“노력하십시오. 소임을 다하면 폐출되겠습니까? 늘 불효할까 걱정하시면 계위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연마하며 남을 탓하지 않으면 어려워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극은 헌공의 속내를 알고 있었다. 그가 대책은 권유하지 않고 도덕적 인품을 갖추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태자의 품성을 미리 알고 후세에 이름이나 남기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여희는 신생의 두 아우 중이와 이오도 음식에 독을 넣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무고했다. 중이는 적(狄)으로 도망쳤다가 여러 나라를 떠도는 망명객이 됐으며, 이오는 양(梁)으로 도망쳤다가 진(秦)의 도움으로 진(晉)으로 돌아가 혜공(惠公)이 됐다. 신생의 뒤를 이어 태자가 됐던 해제는 헌공의 장례식에서 이극에게 피살됐다. 이극은 해제의 동생 도자마저 살해했다. 악랄한 음모를 꾸몄던 여희의 말로는 역사에 남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헌공의 후계자로 세우려고 했던 아들도 후사를 잇지 못하고 피살되었다. 이렇게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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