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장각의 군사들은 가는 곳마다 관군을 쳐부수고 승리했다. 대장군 하진은 급박한 사실을 황제께 아뢰고 각 처에 조칙을 내려 반란역도들을 공격해 공을 세우게 한 뒤에 중랑장 노식과 황보승, 주전에게 각각 정예부대를 주어 세 길로 나누어 장각을 공격하게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장각의 대군은 유주를 공격하니 유주 태수 유언은 부하 장수 교위인 추정을 불러 의논했다.

“황건적 장각이 유주를 침범하니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가?” “적의 세력은 대군이고 우리 관군은 열세이니 사도께서는 속히 의병을 모집하시어 적병을 막는 것이 상책인가 하오.”

유언은 추정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격문을 써서 의병들을 모집했다.

유 태수의 격문은 탁현(涿縣)에도 나붙게 됐다.

탁현 고을에는 짚신과 돗자리를 엮어서 생계를 이어가는 한 인물이 있었다. 그 사람은 평소 말수가 적고 성정이 온화하고 너그러웠다. 기쁜 일이 있거나 고난스러운 일이 있어도 얼굴에 표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뜻을 항상 크게 품고 있어서 천하의 호걸들을 사귀기를 좋아했는데 키는 8척이나 되고 귀는 코끼리처럼 어깨까지 늘어졌고 팔도 길어서 손끝이 무릎을 내려왔다. 눈이 크다보니 자신의 귀를 볼 수 있고 얼굴은 관옥처럼 흰데 입술은 윤이 나서 기름을 바른 듯했다.

이름은 유비(劉備)며 자(字)를 현덕(玄德)이라 했다. 족보를 따지고 올라가 보면 한(漢)나라의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의 후예요, 한나라 경제 황제의 원손이었다. 유승의 아들 유정은 한 무제 때 탁록정후가 돼서 탁현에 살았으므로 유씨 가문 뿌리의 한 가지가 이곳에 살게 된 것이었다. 유비 현덕의 조부는 유웅(劉雄)이요, 아버지는 유홍(劉弘)이었다.

유홍이 효렴(孝廉)으로 뽑혀 아전이 됐으나 일찍이 죽으니 현덕은 어려서 고자(孤子)가 됐다. 그는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시어 곳곳에서 효자라는 칭송을 들었다. 가세가 형편 없다보니 유비는 짚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이었다.

그의 집은 탁군 누상촌(樓桑村)에 있었다. 집 바로 앞에는 다섯 길이나 되는 아름드리 큰 뽕나무가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일산(日傘)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상을 잘 보는 관상쟁이가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이 집에는 반드시 귀인이 날 것이다” 하고 머리를 숙여 예를 하고 지나갔다.

현덕이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나무 아래에서 뛰놀면서 지껄이는 말이 있었다.

“나는 장차 자라서 천자(天子)가 되어 이런 일산을 받는 인물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이건만 수작이 엉뚱했다.

숙부 유원이 그 말을 듣고 보통 아이가 아니고 비상함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 숙부는 현덕의 집이 가난하므로 항상 나무와 식량을 곧잘 대어 주었다. 현덕의 나이가 15세가 되자 어머니는 유학을 시켰다. 현덕은 정현(鄭玄)과 노식(盧植)을 찾아 글을 배우고 공손찬(公孫瓚)하고는 동문수학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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