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은 지방의 말단 관리로 일개 평민에서 일어나 한(漢)제국의 초기 황제가 됐다. 그가 역산으로 죄수들을 이송할 때 술에 취해 숲에서 길을 가로 막는 흰 뱀(白蛇)을 베고 의병을 일으켰다는 설화가 뒤따른 인물이었다.

그가 초(楚)나라 항우와의 수많은 전쟁 끝에 일구어낸 한(漢)제국은 2백년 남짓해서 후손이 외척인 왕망(BC 41~AD 8)에게 나라를 찬탈당해 망해버렸다. 그 후 광무제(光武帝)가 후한(後漢)을 부흥시켰으나 유제(幼帝)가 즉위하고부터 외척과 환관들의 정쟁이 거듭됨에 따라 그마저도 국가의 존폐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천하의 역사란 나누었다가 합하고 합한 뒤에는 반드시 또 나누어지기 마련이었다.

후한은 헌제 때에 또 다시 삼국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나라가 그 지경이 된 까닭을 따져 보면 헌제의 윗대인 환제와 영제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환제는 수가 틀리면 어진 신하들을 가두어 버리거나 귀양을 보내고 간사한 환관들을 옆에 두고 사랑했다.

환제가 죽고 영제가 즉위하자 대장군 두무(竇武)와 태부 진번(陳蕃)이 황제를 잘 도왔으나 이 역시 환관 조절(曹節)이 권력을 농단했다. 두무와 진번이 조절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그 일이 사전에 탄로나 도리어 내시 조절한테 선제공격을 당해 죽임을 당했다. 그로부터 환관들의 무리는 더욱 방자해 나라를 한층 더 어지럽게 이끌었다.

영제의 건녕 2년 4월 망일이었다.

영제가 은덕전에 출어해 옥좌에 앉으려고 할 때였다. 전각 한 귀퉁이에서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면서 대들보 위에서 한 마리 푸른색의 큰 구렁이가 옥좌 위로 먼저 떨어졌다. 영제는 기절초풍으로 쓰러졌고 만조백관들은 혼비백산해 서로 다투어 달아났다. 호위무사들이 황제를 부축해 내전으로 들어가고 푸른 구렁이를 잡으려고 했으나 눈 깜짝할 사이 뱀은 사라지고 없었다.

뒤이어 천둥 번개가 천지를 진동했다. 벼락이 내리치며 비와 진눈깨비가 뒤섞여 억수 같이 쏟아졌다. 그 바람에 전각과 건물이 수백 칸이나 소실됐다. 모두가 큰 변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건녕 4년 2월은 낙양에 지진이 일어나 땅이 갈라졌고 해안에는 해일이 덮쳐 수많은 백성들이 바다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렸다. 천재지변은 그칠 줄을 몰랐다.

광화 원년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고 6월에는 십여 미터나 되는 검은 장기(?氣)가 은덕전을 휘감았다.

7월에는 옥당(玉堂)에 무지개가 꽂히자 오원산이 무너지면서 마을에는 큰 웅덩이들이 내려앉으며 그 구덩이에 빠져 죽은 백성이 부지기수였다.

천재지변은 쉽게 멈추지를 않고 나라 곳곳에서 재앙이 일어나자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했다. 영제는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제는 문무백관들을 금상문에 모이게 하고 조칙을 내려 물었다.

“짐이 제위에 오른 후에 덕이 없는 탓인지 천재지변이 멈추지를 않는구려. 선대들에게 송구하고 마음은 불안할 뿐이다. 모든 신하들은 주저하지 말고 바른 말을 하여 상금에 일어나는 불길한 재앙을 대처할 방법을 말해보라.”

그때 글 잘 짓기로 유명한 의랑 채옹(蔡邕)은 붓을 들어 황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근래에 구렁이가 옥좌에 떨어지고 암탉이 수탉으로 된 것은 나라가 망할 조짐이옵니다. 그러나 하늘은 아직도 한실(漢室)을 버리지 아니하고 사랑하시어 천재지변을 보여서 임금과 신하로 하여금 뒤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갖게 했습니다.

예로부터 제왕은 재변을 만나면 몸을 추스르고 덕을 닦는다 했습니다. 지금 조정에는 암탉 같은 조절의 무리들이 국권을 농락해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러하니 암탉이 수탉이 된 것입니다. 빨리 이 무리들을 처치하신다면 천재지변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옵니다.”

황제는 채옹의 상소를 읽자 마음이 감동돼 옷을 고쳐 입으려 내전으로 들어가려할 때 내시 조절은 황제를 모시는 젊은 내시를 가만히 손짓하여 불렀다.

“너는 폐하를 모시고 내전으로 들어가거든 채옹이란 놈은 천하에 죽일 놈이라고 아뢰어라.”

젊은 내시는 눈으로 화답을 하고 황제를 모시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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