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영제는 상소를 읽고 감동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내전으로 나갈 때였다. 조절의 귀띔을 미리 받은 젊은 내시가 황제에게 아뢰었다.

“채옹이란 놈은 천하에 죽일 놈입니다. 청탁을 하여 과거를 본 놈입니다. 이런 놈이 조정에 있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옵니다.”

“그래? 채옹이가 청탁을 넣어서 과거를 봤다고?”

“예, 그러하옵니다. 권문세가인 태부 진번한테 청을 넣어서 과거에 뽑혔습니다. 지난번 역적으로 몰렸던 죽은 진번과 바로 한패인 줄 아옵니다.”

“오, 그랬더냐? 그래서 너희들을 미워해 암탉이라 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소인들은 고환만 없을 뿐이지 암탉은 아니올시다. 억울한 빈정거림이옵니다.”

“그놈은 소인놈이로구나. 벼슬을 떼어내고 멀리 내쫓아라.”

채옹의 상소를 읽고 감동됐던 영제는 내시의 말 한마디에 어이없게도 채옹의 벼슬을 내리고 시골로 내쫓았다.

그 뒤부터 환관들의 극성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조절을 위시해 장양, 조충, 봉서, 단규, 후람, 건석, 정광, 하운, 곽승 등 열 명의 내시는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황제를 둘러싸고 인(人)의 장막을 치고 나랏일을 주물렀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십상시(十常侍)’라 불렀다.

재능 있고 어진 신하들은 채옹의 뒤를 이어 하나둘 조정에서 멀어져갔다. 이제는 바른 말로 황제에게 간하는 사람도 없었다. 십상시들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영제는 완전히 백성들의 고난과 슬픔과 원망의 한을 알 까닭이 없었다. 조정의 대소사는 완벽하게 불알 없는 십상시 환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황제는 내시들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들었다.

황제는 마침내 십상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장량을 보면 ‘아버지’라고 했으니 나라꼴은 이만하면 갈 데까지 간 것이었다.

나라 정치가 나날이 혼란스러워 가니 백성들은 찌들어 허덕이고 도처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그즈음 거록(鉅鹿)이란 곳에 형제 세 사람이 있었으니 큰 형은 장각이고 둘째는 장보, 막내는 장량이었다.

장각은 과거에 낙방돼 불우하게 산에서 약초를 캐며 일상을 보냈다.

어느 날 그가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고 있을 때 노인 한 사람이 앞에 나타났다. 장각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푸른 눈에 광채가 돌고 붉은 얼굴은 동자 같았다. 장각은 비상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노인은 짚고 있던 청려장(靑藜杖)을 들어 장각을 불렀다. 장각은 노인이 부르는 대로 공손히 따라갔다. 노인은 한갓진 동굴 속으로 들어가더니 책 세 권을 내어 주었다.

“이 책은 천서(天書)로서 태평요술이란 책이다. 너는 이 책을 통독한 후 어진 마음을 가져서 세상을 구하면 성공할 것이요, 악한 마음으로 욕심을 내면 몸이 먼저 망할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서 창생을 구원하라.”

장각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존명은 누구시옵니까?”

“나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다. 그렇게만 알아라.”

장각은 노인으로부터 책을 받아들고 공손히 절을 올렸다. 절을 하고 일어나 보니 금방 앞에 있던 노인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장각은 천서를 중히 여겨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에만 매달렸다.

책 속에는 사람의 병을 고치는 부적과 바람을 청하고 비를 오게 할 수 있는 술법이 가득히 기록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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