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북한 금강산을 방문하고 돌아올 즈음에 들었던 노래는 참으로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조국,…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꿈에도 그리던 금강산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지만, 암흑의 땅에 남겨둘 북녘 주민들이 노예의 삶으로 연명할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슬펐었다.

1997년 2월 15일, 경기도 분당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서 젊은 청년 한 명이 괴한이 쏜 총탄에 쓰러지면서 “간첩” “간첩”이라고 외쳤다. 순호조로 알려진 북한 직파간첩의 흉탄에 쓰러진 이는 바로 북한 김정일의 처조카였던 이한영씨였다. 열흘간 사경을 헤매던 그가 사망한 지도 벌써 20주년이 되었다. 필자가 이들 가족의 비극 속에서 함께 아파한 지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의 수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지금 이 순간 하늘도 무심하다고 할까…. 

당시의 필자는, 천인공노할 북한의 만행 앞에 망연자실 넋을 놓아버린 남겨진 가족들이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었던 상황에 경악했고, 북한인권과 통일운동의 도정에 얼마든지 닥칠 수 있는 위협이기에, 현실로 다가온 비극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심정으로 가족들을 찾아 손을 내밀었었다. 

그렇게 맞잡은 손으로 세상의 파고를 넘어온 지 어언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20주년을 맞아 조촐한 가족기도회라도 갖자는 이야기가 오고갈 무렵,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으니, 북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가족에게 돌아가려는 도중에 독극물 테러로 사망….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1997년과 2017년 2월에 맞추어 누가 이런 기획을 했을까…. 김정일의 생일에 즈음하여 엄청난 대사건들을 일으킨 악마의 세력들은 모두 평양으로 돌아갔다. 남은 것이라고는 가족들의 고통과 두려움만 흩뿌려놓은 채 말이다.  

며칠 전 故 이한영씨의 부인으로부터 늦은 저녁시간 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건너편 전화기에서는 하염없는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애써 입술을 깨물며 가슴으로 내뱉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왜 이런 일들이 또 생겨야 하는지, 2월만 되면 가슴끝이 꽉 막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요… 우린 가족이자나요, 끝까지 곁에 있어주세요.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이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붙들 수 있을까 고뇌하면서 필자도 함께 울었다. 그냥 그렇게 같이 울었었다.

필자가 이런 가슴 아픈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 가족들 중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그들 가족들이 겪는 고통의 일부만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밖에 없다. 

가족들이 가장 가슴 아프게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도 그렇게 아파하며 숨어 사느냐고 의아해 하는 것이다. 물론 죄를 지은 것도 아니기에 숨어살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총탄과 독극물에 의해 가족의 가장이 희생된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 위협이겠는가 말이다.

북한의 사악한 세력들은 결코 악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들을 멈추게 하는 길은 한반도의 통일이며, 그때서야 비로소 이들 가족들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필자는 굳게 믿는다.
이종사촌간인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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