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요즘 태극기를 자주 보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다. 길거리, 경기장에서는 물론 공공건물과 일반건물 옥상에서도 태극기를 볼 수 있다. 국가를 위해 일하는 군인과 119 구급대원들의 복장에도 태극기가 들어가 있고, 각종 공식의례서도 태극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른바 ‘태극기의 물결’이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극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최근 들어 더 눈길이 가게 된 까닭은 서울광장의 태극기 집회와 경기장에서의 태극기 모습이 비교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보수단체와 보수층이 주축을 이룬 태극기 집회가 매 주말 서울광장에서 벌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에 맞서 ‘탄핵 반대’를 구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게 태극기 집회의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광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혼란스런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우려하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단인 서석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에서 ‘태극기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법정에까지 변호사가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태극기 집회는 ‘촛불 집회’에 대응해 현 시국을 불안하게 보는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울광장의 태극기를 보면서 지금처럼 국론이 분열되면 앞으로의 국가행보가 참 어려워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만나게 되면, 태극기 집회와는 다른 순수한 감정이 벅차오른다. 지난 5일 정찬성이 3년 6개월 만의 UFC 복귀전에서 미국 상대 선수를 1라운드 통쾌한 KO승으로 이긴 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환호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1년 앞두고 예행연습차 벌어지는 각종 동계종목 국제 대회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획득해,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게양되며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서울올림픽에 이어 첫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선수들과 국민들이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는 애국심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내세워 확고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를 국민들에게 심어 넣으며 ‘성공한 나라’가 됐다. 지난 반백년 사이에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남북 분단, 가난과 독재를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대한민국만큼 국기가 일상화된 나라도 드물 것이다.

지금 50대 이상의 장년 세대들은 1970~80년대 저녁 무렵 거리에서 국기하강식 때 잠시 멈춰 서서 일반 국민들이 마치 군대식의 국기의례를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수년 전 히트했던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기 의례를 하는 모습은 웃기기보다는 비장감마저 들었다.

심리학적으로 국기의례는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그 어떤 세뇌방법보다도 강력하다. 국기의례는 애국심에 침 흘리며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에 비유할 만하다.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듣게 하면, 나중에 종소리만 들어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리는 것처럼 국기만 보면 뜨거운 감동을 느끼게 하는 대중심리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내 프로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프로스포츠는 반드시 태극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부른 뒤 시작한다. 외국에서 온 프로선수들도 ‘동해물과~’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불러야 한다. 물론 일부 외국선수와 국내 선수들이 다소 불손한 자세로 국기 세리모니에 임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장의 태극기와 광장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성에서는 같은 의미를 갖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용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장의 태극기는 스포츠의 재미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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