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같은 노래라도 여러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조용히 혼자 듣는 음악과 많은 대중이 한데 모여 감상하는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아마도 수만 관중이 운집한 경기장에서 원래는 엄숙하고 애잔한 분위기의 곡이 흥을 돋우는 역동적인 응원가로 둔갑한다면 색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추모곡으로 많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미국의 흑인 영가  ‘Swing Low, Sweet Chariot(내가 탄 마차)’가 영국 럭비와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많이 불려진다는 기사가 최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스포츠면에 실렸다. 내 젊은 시절 에릭 클랩튼의 버전으로 즐겨 들었던 이 노래가 어떻게 영국에서 스포츠 주제가가 됐는지 궁금하기도 해 기사 전문을 찾아 읽었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 1800년대 백인들에 의해 고된 노역과 차별대우로 억압받던 흑인노예들의 뿌리 깊은 한과 정서를 담아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노래가사로 한, 멜로디가 상당히 인상적인 곡이다. ‘Swing low, sweet chariot. Coming for to carry me home(멋진 수레가 천천히 나아가네. 나를 고향집으로 데려가네)’라는 구절이 후렴으로 반복되면서 가슴을 울리는 깊은 감동을 준다. 1950~60년대 마르틴 루터 목사 등이 흑인민권운동을 주도할 때, 흑인들의 단합을 이끄는 거리의 행진곡으로도 활용됐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에릭 클랩튼 등 세계 유명 팝가수와 성가대, 합창단 등이 여러 버전으로 불렀으며, 지난 2011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의 추모 행사에서 한때 잡스의 연인이었던 존 바에즈가 노래해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 2월 4일, 영국 런던의 럭비경기장 트위큰햄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럭비 국가대항전에서 경기시작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8만여 관중은 영국 국가대표팀 주제가로 채택된 이 노래를 불렀다. 미국 사람들에게 19세기 흑인노예제도의 어두운 그늘을 떠오르게 하며 마음을 무겁게 하는 성스러운 곡이 럭비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불린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국팬들은 1988년 3월 19일 영국이 아일랜드에게 기억에 남는 역전승을 기록하면서 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 그 이후 여러 사람들과 단체들에서 이 노래를 응원가로 퍼뜨렸으며, 1991년 영국 럭비 국가대표팀이 재즈풍의 공식 노래로 합창, 비디오로 제작했다. 레게 팝밴드 ‘UB40’는 2003년 호주월드컵 직전 다른 버전으로 불렀으며, 2015년 영국 여가수 엘라 에어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 노래는 영국 럭비대표팀에게 힘과 희망을 불러 일으키며 ‘승리의 곡’으로 자리 잡았다.

스폰서도 이 노래를 앞세워 영국 국가대표팀 후원에 나섰다. 2003년 월드컵에서 영국이 우승을 차지하자, 국적사인 영국항공은 “영국팀이 ‘Sweet Chariot 747’을 타고 홈으로 개선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며, 독일의 BMW사는 최근 영국팀을 공식 후원하며 ‘Sweet Chariot’ 마케팅에 영국 대표선수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2010-11 영국 축구 시즌에서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스토크시티와의 경기에 대해 “축구보다 럭비에 가까웠다”며 스토크시티의 물리적 전술을 비판하자 불만을 품은 스토크시티 팬들이 수개월 후 이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부르면서 스토크시티의 승리를 자축했다. 스토크시티 팬들은 자신들의 응원곡으로 현재까지 계속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영국에서 흑인영가인 이 노래가 응원가로 불리는 것에 대해 당혹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승화를 도모하는 기원을 갖고 있는 이 노래가 영국 맥주를 마시며 흥분을 고조시키고 경기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응원가로 둔갑했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도 하겠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영가가 영국의 응원가로 어떻게 자리 잡게 됐는지를 알게 되면서 영국 스포츠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응원문화나 노래를 만들면 어떨까. 한국인의 정서와 한을 표현한 민요 ‘아리랑’을 여러 버전으로 불러 외국으로 전파하고, 세계 각국 사람들의 영적인 감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명곡들을 우리나라 경기장에서 색다른 버전으로 선보여 흥미를 자아내면 ‘스포츠 한류’가 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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