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운동선수가 정치, 사회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밝힌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개인적인 소신을 분명하게 말할 경우 찬반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의 소신발언은 많은 논쟁을 불러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지하는 편에서는 “운동선수지만 정치적인 상황과 시대정신을 잘 읽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반대하는 측에선 “운동하자는데 정치하려고 하는가. 대중의 인기를 등에 얻고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는 견해를 보일 수 있다.

현대스포츠사에서 여러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소신을 밝힌 스포츠 스타들이 많지 않았던 이유도 스포츠만의 순수성을 넘어서는 ‘개념적 행위’를 할 경우 실정법에 따른 징계와 제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는 1960년대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미국 징병제도에 대한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월남전 참전에 대해서 ‘야만적인 전쟁’으로 매도하고 반전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던 알리는 ‘병역기피자’로 법적 처벌을 받고 챔피언타이틀도 반납해야 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200m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에서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리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다 메달을 박탈당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남자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한국대표팀의 박종우가 관중이 건넨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IOC의 조사를 받았다.

디지털 시대, 운동선수들이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따라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터넷, 정보기술,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운동선수들도 정보와 지식을 많이 습득하며 개념적 소신을 갖고 여러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지난 5일 3년 6개월 만의 UFC 복귀전에서 승리한 정찬성의 소감 중 ‘태극기, 촛불’ 발언은 국내의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잘 표현했다. 미국 선수를 1라운드 KO로 눕히고 경기직후 링 위에서 정찬성은 “대한민국 시국이 어렵다. 대한민국 사람이 한마음으로 화합하도록 마음 따뜻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탄생하기 기도한다”고 말했다.

정찬성의 소신발언을 두고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매주 주말이면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촛불 시위’와 옹호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각기 해석을 달리한다. 그가 밝힌 것이 ‘촛불 시위’를 지지한다고 하는가 하면, ‘태극기 집회’를 후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정찬성은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말을 아꼈다.

미국에서도 지난 7일 올해 미국프로풋볼 슈퍼볼 챔피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흑인선수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을 거부하며 행동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뉴잉글랜드의 공격수 마셀러스 베넷과 최후방 수비수 데빈 맥코티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정책을 비판하며 백악관 초청 행사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이 슈퍼볼 우승팀 선수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축하하는 것은 오랜 전통이었다. 하지만 맥코티는 “백악관 행사에 가지 않을 것”이라며 “내가 백악관에 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곳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맥코티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예멘, 소말리아, 리비아, 수단 등 이슬람 7개국의 미국 입국 및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슈퍼볼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톰 브래디가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것을 고려할 때 베넷과 맥코티의 백악관 초청 거부는 이례적인 일이다.

운동선수의 ‘개념적 발언’은 깊은 자기 성찰이 있어야 가능하다. 혹독한 운동에 매진하면서도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문화적 행위가 된 시대에 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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