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스노보드에서 이상호(한체대)가 이번 주초 동계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을 따고 2관왕에 오른 것을 보면서 앞으로 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봤다. 지난 수십년간 체육 현장에서 첫 금메달이 얼마나 선수 개인과 종목의 성공에 기여했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첫 금메달은 개인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면서 그 종목의 경쟁력을 일거에 높여주는 촉매제였다.

지난 1960년대 중반 김기수가 프로복싱 첫 세계챔피언에 오르면서 프로복싱 열기를 불러 일으켰다.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이 된 후 프로복싱은 최고 인기종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안방 TV 극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됐으며,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장정구, 유명우 등 기라성같은 세계적인 경량급 세계챔피언들이 십수년간 줄을 이어 탄생했다. 레슬링 ‘레전드’ 장창선은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이 됐을 무렵, 미국 세계레슬링 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한국스포츠 사상 첫 세계 선수권자가 됐다. 우리나라 모든 경기 종목을 통하여 첫 세계선수권자가 된 장창선은 현역 은퇴 후 후진양성과 레슬링 발전에 힘을 쓰며 후배 양정모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건국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레슬링은 복싱과 함께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 박스’로 자리 잡으며 격투기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지금은 복싱과 레슬링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선수가 별로 없어 첫 메달리스트들의 전통과 약발(?)이 크게 떨어진 모습이지만 1970~90년대까지는 나름대로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남녀양궁과 여자골프는 첫 금맥이 터진 이후 아직까지 승승장구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양궁은 김진호(현재 한체대 교수)가 여고생이던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경이적인 5관왕에 오른 뒤 한국남녀는 2016 리우올림픽까지 세계 최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골프는 박세리가 IMF 경제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던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기적같은 연장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스타에 오른 뒤 한국의 여성골퍼들은 전 세계를 누빈다. ‘박세리키드’ 박인비는 아시아 최초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112년 만에 올림픽 종목이 된 2016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세계골프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동계종목에서 첫 금메달도 나름대로 의미가 컸다. 쇼트트랙 초창기였던 1990년대 간판스타였던 김기훈이 19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 남자 1000m서 우승, 동계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한국빙상은 쇼트트랙에서 남녀 공히 무적의 군단을 이루었다. 2012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 이승훈과 이상화(당시 한체대)가 나란히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합작했으며 피겨의 김연아는 이미 세계선수권자의 최고 기량을 과시하며 피겨 첫 금메달을 안았다.   

이상호의 스노보드 첫 금메달은 아시아무대에서 거둔 것으로 그동안 화려했던 역대 첫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에 비해 의미가 다소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불모지였던 설상종목으로 공인된 첫 국제무대에서 쾌거를 거두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성과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지난해 국제월드컵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뒤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이상호에게 이번 동계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은 큰 자신감을 갖게 해줬을 것이다. 강원도 ‘토종’ 출신으로 이상호는 주니어 시절 제스키연맹(FIS)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대회전 금·은메달 및 회전 동메달을 수상한 바 있는데, 홈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설상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한번 노려볼 만하다. 그동안 피겨,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에 가려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참가하는 데 급급했던 설상종목에서 이상호가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한국스포츠는 눈꽃이 화려하게 피듯 설상 종목에서 향후 금메달 퍼레이드를 한번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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