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많고 ‘빽’ 좋은 최순실씨에게 스포츠는 ‘꽃놀이 마당’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딸 정유라를 승마선수로 입문시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고, 체육 특기자로 명문 이화여대에 입학시켰다. 박근혜 대통령과 오랜 지인이라는 위세를 과시하며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국내 스포츠 육성을 위해 재벌회사들로부터 수백억원을 강제 출연토록 했고, 이를 운영할 재단법인을 차렸다. 그가 만든 재단에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펜싱 금메달리스트인 고영태씨를 비롯해 운동선수 출신과 체육학 박사 등이 대거 발탁돼 그의 개인적 일을 거들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 최순실씨와 그의 일파들은 스포츠를 매개로 불법, 탈법, 편법 등을 자행하며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로 법적인 처벌을 받는 불행한 상태에 놓였다. 최순실 사태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면서 엄청난 충격을 국민들에게 안겨주었다.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가져왔으며 국가행정이 마비되는 안보, 경제적인 위기를 초래했다. 최순실씨 파장은 그 범위가 깊고도 넓어 앞으로 폐해가 얼마만큼 이어질지는 누구도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최순실씨는 분명 정상적인 스포츠인은 아니었다. 스포츠를 순수하게 즐기고 좋아하지 않았다. 명목상으로 스포츠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스포츠를 개인적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스포츠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검찰특별수사본부 조사결과에서 밝혀졌다. 검찰이 구속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휴대폰 녹음 파일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원래 박 대통령이 취임 직전 만든 3대 국정기조에 ‘체육’을 넣으려 했던 것으로 모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2013년 2월 중순 최순실씨는 국정기조에 들어갈 표현을 놓고 박 대통령과 고심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8년 만든 국민교육헌장에 등장한 ‘창조’ ‘문화’ 등의 단어를 발췌해 의견을 나눴다. 녹취록에는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문화융성’으로 하자”고 의견을 피력하자 최씨가 “‘문화·체육융성’으로 하자”고 제안하는 내용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면 역풍을 맞는다”고 지적하자 최 씨는 ‘문화융성’이라는 표현에 동의했다. 

이때만 해도 최씨는 체육의 중요성과 역할을 알았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체육이 경제와 함께 압축성장을 이루며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며 사회적 통합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체육’을 국정기조 전면에 내세우면 스포츠를 우민화 정책으로 활용했던 과거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를 연상시킨다는 생각으로 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최씨는 국정기조에 체육을 넣으려했던 애초의 아이디어에 구애되어 머뭇거리지 않았다. 성악을 하던 딸을 승마로 전환했던 최씨는 본격적으로 체육에서 이권사업을 챙기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미르·K스포츠재단, 조카 장시호씨를 앞세워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을 박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딸의 승마관련 지원금을 받기 위해 독일에 스포츠컨설팅업체인 코레스포츠를 설립하기도 했다.

최씨에게 아쉬운 것은 체육의 본질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위선적인 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점이다. 체육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훈련과 경기를 통해 협동과 양보, 배려의 가치를 배우는 ‘덕의 학교’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했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 스포츠인들은 스포츠가 개인적 욕망으로 일탈된다면 얼마나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끝없이 나오는 최순실씨의 악행을 접하면서 스포츠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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