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그 해 여름은 아주 무더웠다. 더위에 지쳐 게으름을 피우면서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게 뜨거운 청춘들의 행복한 위안거리였다. 당시 최고의 인기팀은 단연 해태 타이거즈였다.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 독재정권의 탄압에 억눌렸던 국민들은 승승장구하는 호남 연고의 해태 경기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하얀 러닝셔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집안 마당의 조그만 야외 나무평상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프로야구 TV 중계를 즐기는 모습은 낯익은 광경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신촌대학가는 연일 벌어지는 데모로 최루탄 연기로 뒤덮여 눈을 뜨고 걸어 다니기가 어려웠다. 대학 자취생들은 잦은 정전에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양초를 찾아내 촛불을 밝혔다. 시대의 아픔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대학생 5명은 음악과 사랑, 프로야구를 즐기며 푸르른 청춘의 꿈을 가꾸었다. 

지난 주말 고교 동창생들과 함께 송년모임을 겸해 부부동반으로 관람한 창작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의 줄거리이다. 뮤지컬은 싱어송라이터 고 김광석씨와 그룹 ‘동물원’의 음악 인생을 실화로 구성해 결성당시인 1988년의 추억과 감성, 멜로디를 담았다. 멤버였던 정신과 의사 김창기씨가 김광석씨의 기일을 맞아 추억 가득한 오래된 연습실을 찾아 예전 자신들이 불렀던 노래들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다. 동물원의 대표곡 ‘변해가네’ ‘시청앞 지하철역에서’ ‘널 사랑하겠어’ 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이 2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그 시대의 향수를 짙게 느끼게 해주었다.

뮤지컬에서 소개된 프로야구 이야기를 보며 스포츠팬의 눈으로 보는 관점이 시대상에 따라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로 인해 최고로 주목받은 팀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해태는 연고지인 호남뿐 아니라 서울, 인천, 대전, 부산 등 전국 어디에서 경기를 하더라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선동렬, 김성한, 김일권 등 기라성같은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는데다 광주민주화항쟁으로 깊은 ‘한’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정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남출신이 아니라도 해태를 응원하며 프로야구에 도취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나 스포츠팬들의 프로야구를 즐기는 형태는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 민주화, 산업화를 거치며 해태와 같이 특정팀에 일방적인 성원을 보내는 양상이 없어졌다. 팬들의 개인적인 성향과 팀 성적, 언론들의 관심도에 따라 팀을 선호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올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두산, LG, 한화, 롯데 등이 팬들이 좋아하는 구단들이며 해태의 후신인 기아 타이거즈는 예전 해태 시절만큼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한다. 이는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제대로 잃지 못하면 인기 서열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올해 체육계를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시대적인 맥락을 잘못 파악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힘을 앞세워 개인의 이득을 챙기고, 친인척과 측근들을 기용한 최순실씨 일파의 국정농단은 과거 권위주위 정권에서나 있을법한 일이었다. 최순실씨 등은 국가 발전에 스포츠가 기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개인적 욕심을 갖고 사업적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프로야구 인기팀의 변천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한국스포츠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민주화 이전 특정인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개인의 사욕을 챙기는 전근대적인 예전의 그런 곳이 아니다. 

세상도 변하고 스포츠도 변해가고 있다는 걸 ‘동물원’의 히트곡 ‘변해가네’ 가사는 일러주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 일 년이 유수같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는 세밑, 한번쯤 주위를 돌아보며 변화하는 세상을 생각해 볼 때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