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요즘 체육인들의 송년 모임에 가면 두 여인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남성도 아닌 여성들이 체육계를 뒤흔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나라 체육은 두 여인들 때문에 혁명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두 여인은 김영란씨와 최순실씨이다.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한 체육계가 두 사람으로 인해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으며 변화의 한복판에 섰다. 공교롭게도 1956년, 원숭이띠로 같은 나이인 둘이 체육계와는 실제로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체육계를 뒤흔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대법원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씨가 법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은 지난 9월 28일부터 발효된 이후 체육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우선 학생 선수들의 수업 참여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운동을 이유로 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않던 학생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수업을 받는 것이다. 필자가 강의하는 모 대학 스포츠 관련학과 수업에 체육특기자 학생 4명이 수강했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예전 같으면 학기 중 거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학생 선수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름과 얼굴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수업에 열심히 임했다. 김영란법이 학생 선수의 성적 및 수업 출격처리를 원칙대로 하지 않으면 이를 위반한 선생, 지도자, 학교 등을 처벌하기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이후 기업, 관공서도 식사 접대 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지만 운동선수들이 포함된 학교 현장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최근 재판정에서 자신의 직업을 임대업이라고 밝힌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는 승마선수 출신인 자신의 딸 정유라씨를 이화여대에 부정입학시킨 의혹과 함께 대기업들로부터 강제모금을 받아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을 설립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최순실씨는 국가대표 정유라씨의 해외전지훈련비로 삼성으로부터 220억원을 지원받는 계약을 체결하는 데 압력을 행사한 혐의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수십년간 사적 관계를 맺어온 최순실씨는 국정과 정부 인사에 간여하면서 전문성이 비교적 약한 체육과 문화 부문에 개입해 여러 개인적인 사업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씨와 최순실씨는 선과 악의 이미지로 스포츠계에 비쳐졌다. 오랫동안 누적된 고질적인 병폐를 뿌리 뽑고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제정에 힘썼던 김영란씨의 의지가 스포츠에서 적극 반영되고 있는 반면에 애초부터 악한 마음을 갖고 스포츠를 이용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최순실씨의 그동안의 행적은 결과적으로 스포츠의 ‘권력형 부패’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효 서울대 강의교수는 최근 스포츠포럼 21 정책토론에서 “‘최순실사태’서는 과거 음험한 부정의 역사를 보았다면 ‘김영란법’에선 미래를 밝힐 희망의 역사를 엿보게 해준다”며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을 해오면서 스포츠계는 그동안 자체 정화를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앞으로 스포츠 본연의 가치인 공정성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사회학자 앨런 거트만은 자신의 명저 ‘근대스포츠의 본질-제례의식에서 기록추구로’에서 근대스포츠의 특징을 세속성, 기회균등, 전문화, 합리화, 관료주의화, 수량화, 기록추구로 요약하고, 이러한 특징들이 바로 근대 사회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우리 사회도 거트만의 지적대로 인간의 규범과 가치를 소홀하고 성과에만 매몰돼 엘리트스포츠 육성에 주력해 스포츠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본다. 

김영란씨와 최순실씨 경우 서로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면서도 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우리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공통적으로 시사해 주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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