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교수

 

첨단과학의 시대!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끊임없는 테러·폭력, 빈번해 진 자연재해로 인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국내 상황도 어수선하다. 최근엔 비선실세라 불리는 최순실 게이트로 떠들썩하다. 우리 사회·국가가 혼란과 혼돈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일부 관료의 도덕적 해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질서도 없다. 고질적인 정치의 부재현상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사회 정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핵심 요소는 건전한 국가 정신을 갖는 일이다. 또 국가의 발전은 국가 간 호혜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 세계는 공동체이다. 일인당 GDP가 국가의 선진화를 결정하고 소수의 공복(公僕)만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의 불평불만을 해소하는 것은 균형과 조화, 다시 말하면 중용에 있다. 안정적 성장의 기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성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부하직원이 상사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은 중용의 자세가 아니다. 흔들리는 갈대에 불과하다. 어찌 됐든 사회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무엇이 필요한가. 중용(中庸)의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다. 중용이란 ‘가운데’서 평상성을 유지함을 의미한다. 그 근간은 ‘중(中)’과 ‘화(和)’의 원리에 있다. 여기서 ‘화’란 유대관계가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면에서 중용은 우리 삶에 지혜를 주며 공평·공정하며,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맛이 있는 음식,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과연 몸에 좋을까.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으면 해롭다. 더군다나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편식을 하지 않겠는가. 아직까지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 좋다는 식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음식의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몸에 좋고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다. 적절한 양, 균형 있는 식습관이 해로운 요소를 상쇄시키고 영양을 강화시킨다. 이게 식품영양학에서의 중용의 원리이다.

이렇듯 중용은 전반적으로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일상에서 중용을 위배하거나 상실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삶의 질을 높이고 풍요로운 사회·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공적 가치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이를 실현하는 데 공적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 근간 역시 중용이다. 중용은 적절한 자유와 규제를 통해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방지한다. 중용이 없다면 옳고 바른 법도를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실상 체득이 아닌 허상을 보게 할 뿐이다.

中庸(중용)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仲尼曰(중니왈) 君子中庸(군자중용)이요 小人反中庸(소인반중용)이라.” 뜻풀이를 해보면,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지만 소인은 중용을 어긴다”라는 의미이다.

일의 수행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아울러 긍정적인 가치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수행 과정에 다수의 의견과 전문가의 조언을 존중해서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심리·기업구조는 중도, 중용에서 벗어나 있다. 청년들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임금격차에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5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월 임금격차가 무려 250만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48.7% 수준이니 임금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중용의 실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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