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

이미 ‘개헌 블랙홀’ 발언을 한 적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한 언급이다.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개헌론, 이는 분명히 로마신화의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지닌 측면이 있다. 청와대의 제동은 무엇보다도 온 국민이 경제살리기와 위기 극복을 위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긍된다. 레임덕 가속화는 국정운영의 비효율성을 낳는다. 정치공학적인 권력구조개편 논의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아쉽게도 청와대의 인식부족이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개헌이 권력구조개편에 국한된 것인가. 기본권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헌법정신으로 복지와 경제를 살리자는 게 잘못인가. 대통령 한 사람 개인기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을 일반에 분산시키고 권한을 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위임하면 안 되는가. 개헌과 경제살리기는 서로 동떨어진 어젠다인가. 대통령 5년단임제인 ‘87년 체제’는 전두환 군사정권 말기에 졸속으로 이뤄진 승자독식 체제가 아닌가. 혹자는 다음 정권에서 논의하자고 하지만 이는 병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다음에 대선 끝나면 치료해 줄게”라고 하는 식의 지연책에 다름없지 않는가 말이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감안해도 개헌은 시급하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액튼 경)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마태복음 19장, 예수)

미국식 정치구조와 가치, 리더십에 큰 의구심을 던져준 클린턴-트럼프 진흙탕싸움이다. 뉴스 끝에 필자가 떠올린 경구다. 균형 잃고 비대증에 빠진 미국식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알몸난타전이다. 정책 대결은 뒤로 빠지고 막판 폭로전으로 비화된 데 이어 “성추문” “악마” “감옥 보낼 것”이라고 하는 막말로 낯 뜨거운 막장드라마의 극치를 보여준다. 도를 넘은 인신공격, 갑(甲)질 파시즘적 태도, 거짓말과 위선 등을 보면 과연 두 후보가 세계 최강국 미국의 권위를 유지시킬 최소한의 도덕성과 양심을 지닌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불신하게 된다. 가식투성이인 어느 한 개인에게 미국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안겨주기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국민 앞에 사심 비우고 헌법 앞에 겸허히 내려놓지 못한 후보들이다.

별의별 흑색선전과 네거티브 폭로전으로 이전투구가 되는 것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이건, 국회의원·시장·군수 선거이건 마찬가지다. 사탕발림 공약과 포퓰리즘으로 표몰이에만 급급할 뿐이다. 당선 후에도 국가발전과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혜안에 바탕한 크고 지혜로운 리더십을 보여주기는커녕 인의 장막에 갇혀 아첨 속에 자족하고 군림하며 퇴임 후 자신의 안위 마련에만 급급하다 임기를 마치고 만다. 그 사이에 서민 가슴은 멍이 들고 병이 난다. 지금도 국민들은 무언가 말 못할 병에 걸린 듯 답답하기만 한 표정으로 국정을 바라본다. 집값은 오른다는데 체감경기는 왜 이리 나쁜지, 남북관계는 언제까지 경색국면을 달리며 계속 으르렁거려야 하는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또 무엇인지, 고 백남기씨는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는데 왜 사인이 병사가 됐는지… 모두 의문투성이다.

사실 헌법 권력구조 자체가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제도보다는 운용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바야흐로 영웅 없는 대중민주주의시대이다. 복잡다기화 된 첨단현대사회 모습과 나날이 가속화되는 사회발전 추이를 염두에 두면 개인기보다는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영도적 지위에 권한이 집중되는 대통령중심제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앞으로도 제왕적 혹은 전제적 대통령제를 구가하거나 악용될 소지가 있는 시스템이라면 권력구조부터 시대에 맞게 새로 갖춰야 한다. 사견이지만 우리나라도 유럽식 의원내각제 헌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유권자의 민의가 때를 놓치지 않고 진취적 탄력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입장에서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이에 관한 견해를 밝혀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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