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설마 그럴 리가. (사실이) 아니길 바랬는데…. 최순실에게 농락당한 것일까요? 전혀 믿어지지가 않아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할 만큼 사심 없던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요? 저뿐만 아니라 제 주위 지인들은 다 엄청난 충격에 어안이 벙벙해요. 날씨는 벌써 왜 이리 추운가요. 장사도 안 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참 안타깝기 짝이 없어요.” (A씨·여)

“국정최고책임자로 사교(邪敎)의 교주 딸에게 빠져 공(公)·사(私)를 구분 못하고 국정농단을 허용한 책임이 큽니다. 대통령이 늘 내세운 ‘원칙’과 ‘신뢰’는 국민과 민생에 대한 것이 아니고 특정인과 측근에 대한 아집이었지 않습니까? 박 대통령 스스로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히고 사실관계를 낱낱이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2선으로 물러나 국민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겠지요.”(B씨·남)

A씨는 필자의 단골식당 주인이고, B씨는 후배 직장인이다. 사사건건 대척점에 서는 여야 정치권만큼이나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결론은 하나다. 앞으로가 문제다. 경위야 어떻게 되었건 간에 사달은 이미 벌어졌다. 덮어서도 안 되고 덮을 수도 없다. 박 대통령은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한다는 결연한 자세와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국민 앞에 지금부터라도 다 내려놓고 투명해야 한다. 스스로 조사에 임해 다 고백해야 한다. 국민의 따가운 질책과 뼈아픈 회초리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돈다발을 들고 최씨 일가를 찾아와 인사 부탁을 했다는 증언 내용까지 나왔다. 그게 사실이라면 친박 정치인들은 헌정사 초유의 국기문란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는 것 아닌가. 2012년 박근혜정권을 탄생시킨 새누리당은 중도하차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무능함과 국민을 기만한 책임을 지고 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순실에게 줄을 대 호가호위한 친박 인사가 있다면 출당시키고 새 출발해야 한다.

국정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 비상시국이다. ‘식물 대통령’이 된 박 대통령 대신 누군가는 일해야 한다. 국정시스템은 돌아가야 한다. 안보와 경제 분야는 두말할 나위 없고 입법 사법 행정 등 각 분야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정상가동돼야 한다. 우선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휘를 받지 않는 엄정한 수사와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는 필수적이다. 조사대상에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배제되면 안 된다. 때문에 거국중립내각은 의혹수사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꿔가며 거국중립내각을 거부한 야당 인사들은 민심의 ‘뭇매’를 맞아야 한다. 여당과 협의도 해보지 않고 헌정 사상 초유의 거국중립내각에 토부터 단 것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정략에 눈멀어 잔머리를 굴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혹시나 이들마저 누군가가 써준 원고와 큰 손의 입김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아바타는 아닐까하는 당돌한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야당 생각을 짚어보지도 않고 총리 후보 이름부터 일방적으로 공개한 여당 지도부 행태도 물론 어처구니없고.

다시 말하지만 과제는 대통령 한 사람에 권한이 과도히 집중된 권력구조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헌정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 ‘대(大)’자가 문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왜 큰 것에만 집착하는 것일까. 대형아파트, 대형백화점, 대형병원, 대형찜질방, 대형빌딩…. 작은 것도 숨 좀 쉬자. 민초들도 좀 살도록 하자. 큰 ‘대(大)’라는 글자가 든 대표적 단어가 ‘대통령’이다. 어원으로서는 어떤 영토 안에서 통치하는 자 중에서 가장 큰 인물을 뜻한다. ‘대(大)’라는 글자를 버리는 변혁이 필요하다. 또다시 큰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검찰수사와 진상규명 후엔 개인기보다는 시스템으로 국정이 운영되도록 바꿔야 한다.

시스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운영의 묘이다. 상식과 토론이 지배하는 국정운영이 돼야 한다. 굳이 첫 거국내각총리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좋다. 한국의 정치권에도 강직함과 소신, 건강한 지혜를 갖춘 상식인(常識人)이 왜 없을까 보냐. ‘직접민주주의’의 김병준, ‘경제민주화’의 김종인, ‘저녁이 있는 삶’과 ‘7공화국’의 손학규, ‘헌법 제1조 1항’의 유승민, … 다행히 우리에겐 ‘12척의 배’가 있고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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