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애를 낳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사정을 잘 몰라요.”

필자의 지인 A씨(56, 여)는 요즘 머리가 복잡하다. 몸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딸(32)이 지난해 신생아를 출산하자 외손자 양육은 그의 몫이었다. 아가는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 역아였다. 머리가 아니라 두 다리부터 세상에 나온 아가는 분만 때 의료진의 실수로 한쪽 다리가 부러지는 의료사고가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가가 좀 더 자라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측은한 마음에 자신이 아가 양육 문제를 도맡았다. 늘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맞벌이 부부를 대신해서였다. 1년여가 지나자 아가는 정상아가 됐다. 정형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았는데도 A씨의 지극정성 덕에 정상인의 몸이 됐다. 부러진 다리뼈가 저절로 접합이 돼 튼튼하게 아물었다. 사람 몸이 지닌 자연치유력의 위대함을 보는 순간이었다.

올해 딸 부부는 둘째를 낳았다. 그리고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둘째 손자도 외할머니가 키워달라며 안고 찾아왔다. A씨는 한때 아르바이트로 출근하던 의류매장에서 매장 한 곳을 위탁경영해보라는 좋은 제의를 받아둔 상태였다. 그래서 고민하다 딸과 사위에게 엄마가 처한 사정을 말했다. “엄마도 돈을 좀 벌어 너희 부부와 동생 등에게 나눠주고 싶다” “둘째 손자 양육까지 맡게 되면 나는 첫 손자 때처럼 아이 키우는 일 외에 다른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이젠 내 인생도 살고 싶다”고. 그러자 딸은 엄마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한 뒤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핏덩이같은 갓난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싫은데 어떡해야 좋으냐는 것이었다. 아직 너무 어린 신생아이므로 1~2년만이라도 집에서 키운 다음 어린이집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딸이 아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싫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좋지 않은 뉴스를 자주 접하다보니 믿고 맡기기가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아가가 아플 때가 문제라고 했다. 부모에게 연락이 와 전염방지 등을 감안해 아가를 집에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직장인으로서는 연락을 받았다고 바로 달려갈 수도 없으니 서로 곤란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직장과 집 주변엔 마땅한 어린이집도 없으며 만약 어린이집이 있다고 해도 부부의 퇴근시간과 어린이집 운영마감시간이 맞지 않아 불가능하다고 했다. 듣고 보니 딸과 사위가 참 딱했다. 아가 돌보는 일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모처럼 찾아온 의류매장 일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A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정을 미루고만 있다가 필자에게 자문을 구할 겸 사정을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처지 딱한 부부가 어디 한둘이랴. 그 수효는 아마 전국에 부지기수일 것이다. 국민 세금으로 보육을 지원하고 있긴 하지만 신생아 부부에겐 실제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그러다보니 맞벌이부부 중 산모부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단절녀’가 되고 만다고 한다. 보육문제가 정책적으로 안 풀리니 출산율도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감의 최대 난제도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 문제라고 한다. 돌이켜보면 2012년 대선 때 얼마나 난리법석이었던가. 대선이 끝나면 무언가 달라져도 한참 달라질 것 같지 않았던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지 않았던가. 정부의 보육정책이 신생아 부모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돼야 할 텐데. 내년 대선에서라도 좀 더 심도 있고 세밀한 대안이 나와 줘야 할 텐데 말이다.

이 같은 보육문제 말고도 우리 주위에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대선을 겨냥하고 있는 잠룡들은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아픈 데를 보듬어줄 유익한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사병 충원 방식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느니, 돈 없는 흙수저들만 입대하게 돼 정의롭지 못하다는 등 논란의 대상도 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시대적 변화를 감안해 모병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이미 주창한 바 있다. 즉 군의 정예화, 선진화, 선택과 집중을 전제로 모병제에 찬성한다. 나아가 군경력을 공직 이력으로 계상해줌은 물론, 군미필자의 주요 공직취임을 제한하고 군필자가 사회에서 더 존경받고 더 대우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 잠룡이라면 모병제처럼 실현가능한 정책과 비전, 대안을 제시하라. 시대가 달라졌다. 허울 좋은 말과 국민눈속임 정치로는 안 된다. 3김시대도 끝났고, 특정진영 패권주의는 밑천이 다 들여다보인다. 선동정치는 가라. 사심 없고 진정성 있는 독트린을 준비한 정치지도자라야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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