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올림픽의 꽃 성화 점화는 늘 비밀의 무대였다. 깊은 베일 속에 가려졌다가 신비의 커튼이 열리는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해주는 감동의 마력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점화는 정말 극적이었다. 가난과 역경을 이겨낸 서울아시안게임 여자육상 3관왕 임춘애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으로부터 성화를 건네받고 8만 관중의 박수 속에 잠실주경기장 트랙을 달렸다. 개막식 전날까지 손기정 선생은 최종주자로 알려졌었다. 일제강점기 슬픈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손기정 선생은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한 고국에서 올림픽을 빛낼 성화주자로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다고 생전에 회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최종주자는 새까만 육상 후배 임춘애에게 넘겨줘야 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었다. 반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화대 앞으로 달려간 임춘애는 최종 성화 점화자 3명에게 성화를 건네주었다. 앳된 얼굴의 여고생 손미정양(당시 서울예고), 마라톤 선수 김원탁(당시 건국대), 소흑산도 초등학교 교사 정성만씨 등이었다. 리프트를 타고 성화대 위에 오른 3명은 함께 성화에 불을 붙였다. 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최종 점화자에 평범한 일반인이 선정되리라고는 전혀 상상치 못했다. 동서화합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서울올림픽의 이상을 잘 구현한 발상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장애인 양궁선수 안토니오 레보요가 불화살로 성화를 점화했으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 파킨스씨병으로 투병하던 전 세계프로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성화 점화자가 됐었다. 2000 시드니올림픽, 2004 아테네올림픽,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역대 금메달리스트가 성화 점화자로 선정됐으며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10대 유망주 7명이 성화에 불을 붙였다.

지난 6일 남미대륙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열린 2016 올림픽 개막식 성화 점화는 일반의 예상을 깬 반전 드라마로 개막식 행사 중 가장 압권이었다. 원래 세계 각국 언론 등은 브라질의 세계적인 축구 슈퍼스타 펠레나 네이마르 등을 예상했었으나 이름도 낯선 불운의 마라토너 반데를레이 지 리마(47)가 성화 점화자로 나섰다. 리마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결승선을 5㎞ 앞두고 관중인 아일랜드 신부 출신의 네일 호란의 럭비태클 같은 제지를 갑작스럽게 받았다. 이 사고로 1위에서 3위로 처진 리마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서 웃는 얼굴로 축하댄스까지 추며 동메달을 획득한 것을 좋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폐회식 때 그의 스포츠맨십을 높이 평가해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2005년 브라질 비치발리볼 선수 에마누엘 레고는 한 TV에서 아테네올림픽에서 자신이 획득한 금메달을 건네주려 하자 그는 “내가 딴 동메달은 금메달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평소 스포츠에 대해 갖고 있는 그의 생각을 엿보게 해주었다.

12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만약 그가 ‘특별한’ 사건을 당하지 않고 금메달을 땄더라면 아마도 이번 리우올림픽 성화 점화와 같은 개인적 영예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라질에는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많아 굳이 그를 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선정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리마가 성화 점화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1등만을 추구하며 무한 경쟁을 벌이는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3등의 가치’가 그에 못지않게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는 것을 행동으로 입증해주었다.

리마가 밝혀준 리우올림픽 성화는 삶이 항상 승자만이 절대선이 아니며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3등, 4등, 심지어는 꼴찌까지도 의미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작 전부터 치안 및 정쟁 불안, 경제난, 지카 바이러스 등 악재로 곤욕을 치른 리우올림픽은 개막식에서 리마의 성화 점화로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스토리를 선보이며 그 어느 대회 못지않은 가슴 따뜻한 휴머니즘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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