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  ⓒ천지일보(뉴스천지)

그 해, 1988년 3월 구옥희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대회 우승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왔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이룬 LPGA대회 우승이었지만 골프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단군이래 가장 큰 행사라는 서울올림픽 열기에 묻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캐디 출신으로 독학으로 골프에 입문한 구옥희는 국내에서 20여 차례 우승을 차지한 뒤 1984년 일본 프로무대에 진출, 정상권 선수로 활동하다가 세계 최정상인 미국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했지만 그냥 골프계에서만 알아주는 스타였을 뿐이었다. 골프의 변방이었던 한국여자골프는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조차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해 공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박세리는 구옥희를 롤모델로 삼아 막 골프를 시작해 정상의 꿈을 키웠고, 박인비는 그해 7월 세상에 태어났다. 1988년은 공교롭게도 한국여자골프의 세계화 원년이 됐다. 박세리는 대선배 구옥희에게서 한국여자골프의 가능성을 읽고, 피나는 훈련을 쌓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착실히 성장했다. 1998년 LPGA에 데뷔한 박세리는 US여자오픈과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에서 잇달아 우승을 차지하며 IMF의 어려운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며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미국투어에서 은퇴한 박세리는 116년 만에 골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박인비 등을 이끌고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US오픈에서 박세리가 물 옆에 있는 공을 치기 위해 맨발로 들어 가 검게 탄 종아리와 하얀 발을 드러낸 채 샷을 하고 끝내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것에 매료된 박인비를 비롯 최나연, 신지애 등 이른바 ‘박세리 키드’는 한국여자골프의 밝은 장래를 믿고 골프채를 잡기 시작했다. 박인비는 분당 서현초등학교에서 골프에 입문, ‘제2의 박세리’를 꿈꾸며 열심히 운동에 전념했다. 그의 천부적인 소질은 일찍이 빛을 발했다. 2008년 US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인비는 그동안 메이저대회에서 5승을 기록하며 한국인 중 박세리와 함께 메이저 대회 최다승을 기록했고, LPGA사상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박인비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최종 16언더파를 기록, 금메달을 차지해 대한민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이룩했다.

한국여자골프는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남녀 개인 단체전을 모두 석권한 한국양궁과 함께 세계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종목임을 입증해 보였다. 한국여자골프와 여자양궁은 절대적인 경기력을 갖춘 선수가 등장하고 후배 선수들이 이에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뒤를 이어나가 성공신화를 만든 공통점이 있다. 여자골프가 구옥희, 박세리, 박인비 등으로 이어졌듯이, 여자양궁도 김진호, 김수녕, 장혜진 등으로 세계 정상을 지켜 나가며 ‘난공불락’의 실력을 지켰다.

사실 한국여자골프의 성공비결은 치열한 선수들 간의 경쟁과 노력, 지속적인 스폰서들의 투자, 국제무대를 향한 적극적인 도전의식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여자골프의 지난 30여년의 역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구옥희는 캐디 출신으로 주위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맨손으로 골프에 뛰어들어 국내대회에서 최고 선수가 된 뒤, 좀 더 수준이 나은 일본 무대에서도 정상의 선수가 됐다. 구옥희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미국 무대에 도전, 결국 꿈을 이뤘다. 중3의 어린 나이에 이미 프로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던 박세리는 삼성의 본격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 투어에 진출, 데뷔 첫해부터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박인비는 박세리의 LPGA 제패로 국내 기업들이 여자골프대회 스폰서를 맡고, 골프 지원에 적극 나섬에 따라 자신감을 갖고 많은 한국선수들과 함께 미국 무대에서 선수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특정 종목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진국 주도의 올림픽 종목에서 한국여자골프와 양궁 등이 두각을 나타낸 일은 대단한 것이다. 특히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를 비롯 은메달의 한국계 리디아 고(뉴질랜드) 등 한국 출신의 여성골퍼들은 우수한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한국여자골프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수출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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