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리우올림픽 축구 8강전 한국과 온두라스전이 끝나자 소셜미디어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4강 진출이 좌절된 프리미어리거 손흥민(토트넘)이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아쉬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축구팬들은 울컥하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눈물이 난다” “이렇게 질 수가 없는데, 너무나 아쉽다” 등 일방적으로 우세한 경기 끝에 온두라스의 역습 한 방으로 1-0으로 무너지며 2회 연속 올림픽 4강 진출의 꿈이 무산된 것에 대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금메달 속보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축구 승리를 애타게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컸던 것이다.

언론도 뼈아픈 패배를 경기 상보와 함께 패배 원인 등을 분석하며 자세하게 보도했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많은 언론들이 온두라스가 ‘침대축구’로 이겼다고 전했다는 점이다. ‘침대축구’라는 표현은 수년 전부터 이라크 등 중동팀들이 한국을 이기기 위해 선제골을 기록할 경우, 선수들이 아픈 척하며 그라운드에 넘어져 시간을 끄는 행위를 말하는데 몇 년 만에 이 말이 다시 등장했던 것이다. 언론들은 온두라스전 패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한 적절한 표현으로 ‘침대축구’라는 말을 떠올렸던 것 같다.

이날 경기 내용, 특히 한국이 지고 있던 후반전에서 온두라스는 철저한 잠그기 전략으로 일관, ‘침대축구’라는 말이 딱 어울려 보였다. 온두라스는 1-0으로 앞선 후반 중반부터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후반 39분 두 명이 동시에 쓰러졌으며, 후반 44분에는 선제골의 주인공 알베르스 엘리스가 한국 수비수 정승현에게 밀려나 그라운드에 넘어졌다. 엘리스는 한참을 누워 있다가 실려 나갔는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뛰어다니며 승리를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전체 슈팅수(6-16)로 한국에 일방적으로 밀렸으나 결정적인 슛 한방으로 승리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한국언론들이 시간끌기를 서슴지 않고 구사했던 온두라스를 ‘침대축구’라는 말을 쓰며 폄하했지만 사실 엄밀해 얘기하면 그들에게 ‘침대축구’는 이기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의 8강 돌풍을 이끈 온두라스의 사령탑 호르헤 루이스 핀토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역습을 구사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지장으로 소문나 있다. 이번 올림픽 예선전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에서 먼저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성공시키고 시간을 질질 끌며 1-1 무승부를 만든 것도 잠그기 전략이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온두라스를 상대로 ‘침대축구’를 원망하는 듯한 한국언론들의 보도 태도는 다소 옹색한 감이 없지 않나 싶다. 한국이 선제골을 먼저 터뜨리지 못하고 골 결정력 부족을 드러낸 것이 패인이었지, 온두라스가 ‘침대축구’를 했기 때문에 이길 수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축구도 예선전 멕시코전에서 ‘침대축구’ 덕에 1-0의 승리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온두라스전과 정반대의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지난 런던올림픽 우승팀 멕시코는 시종 우세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으나 한국 골문을 열지 못했다. 한국은 권창훈의 유효 슈팅 한 방이 결승골로 연결된 후 수비수들의 지능적인 플레이로 시간을 끌며 ‘침대축구’를 구사해 승리를 거두고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조1위로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도 반발하기가 쉽지 않다.

축구의 전반적인 상황을 자국 선수들에게 유리하고 좋게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가대표들이 경쟁하는 국제대회에서는 국가의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 있어 더욱 자국 중심주의로 기울어지기 쉽다. ‘침대축구’라는 말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더 크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잘했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잘 못했 을 때는 냉철한 패인분석을 해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타인에 대한 잣대는 엄격하게 하고, 자신에 대한 잣대는 관대하게 해서는 축구에서도 국제경쟁력을 갖춰나가기가 어렵다. 온두라스의 ‘침대축구’는 한국축구가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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