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북-중 관계가 얼었다 녹았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을 보면 그들 관계가 예전처럼 반석(盤石) 위에 있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일 수 있다. 저들의 관계는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촉발한 유엔 제재와 중국의 제재 동참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 단단히 삐져있었다. 중국이 북에 삐진 것은 그들의 만류에도 북이 핵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아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이 북은 돌연 대규모 외교사절단을 중국에 파견했다. 역시 중국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임으로써 얼었다 녹았다 하는 양국 관계의 변덕스런 실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노출시켜 주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 외교사절의 방문과 관련해 “중국과 북한은 중요한 이웃으로 정상적이고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를 중국은 희망한다”고 논평했다. 

대체로 흠 잡힘이 없어야 하는 외교적인 수사(修辭)에 충실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논평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한국전쟁 때 한국과 미국의 자유진영에 맞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운 특수 관계다. 그것을 ‘혈맹(血盟)’이라 표현해왔다. 그렇지만 강대국으로 굴기한 중국이 광명천지 넓은 세상에 책임 있는 성원으로 편입되면서 폐쇄사회이며 국제사회의 왕따인 북한과의 특수 관계에 부담을 느껴 그 표현은 중국 측으로부터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이번에도 ‘혈맹’이란 표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다만 이 논평에서 받게 되는 언짢은 인상은 우리의 역량이 국제사회에서 북보다 압도적인 것임에도 우리 의사가 충분히 존중됨이 없이 남과 북이 똑같은 비중으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중국의 외교적 ‘꽃놀이패’에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북에 대한 국제 제재가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때에 북의 대규모 외교사절에 손을 내밀어 맞아들이는 태도는 국제사회의 눈총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된다고 보아 북의 사절단을 서슴없이 맞아들였다. 북을 꽃놀이패로 이용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 의한 대(對)중국 봉쇄조치가 주변국들의 줄을 잇는 참여로 강화되면서 그들을 심하게 옥죄어 오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베트남 방문에서 미국 무기의 대베트남 ‘금수(禁輸)’ 조치를 풀어 주었으며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본거지이던 캄란 항을 미군이 다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필리핀에 미군을 재투입해 주둔시킨 최근의 조치와 함께 미국이 중국 봉쇄 조치를 강화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상징하는 하나의 ‘사변(事變)’이다.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서 영토 분쟁을 벌이는 베트남은 말하자면 적(敵)의 적이므로 미국의 친구다. 미국과 베트남이 과거 베트남전쟁으로 원수였지만 지금 그들은 공동의 중국 위협 앞에서 우방으로 힘을 합쳤다. 베트남뿐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등도 미국의 중국 봉쇄에 가담하고 있어 외로워지는 중국으로서는 우군의 확보가 급해졌다. 그 대상이 중국의 그런 형편을 기민하게 기회로 포착하고 달려든 북한이며 중국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  

북으로서는 답답하게 숨통을 조여 오는 국제 제재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탈피하지 않고는 그들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현행의 제재가 얼마나 실효적으로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지는 명확한 측정은 어렵지만 적어도 중국이 유엔 결의대로만 북한에 압박을 가해도 북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북의 중국 접근은 ‘궁즉통(窮卽通)’의 변증법적 원리를 활용한 막장을 벗어나려는 생존전법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 주역에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라고 했다. ‘궁즉통(窮卽通)’은 이로부터 유래한다. 북은 국제제재로 숨이 막혀오자 미국에도 대화하자고 접근해오는 한편 우리에게도 군사회담을 하자고 여러 번 졸라대었다. 그들이 뚜렷한 비핵화의지 없이 곤경을 모면하자는 빤한 술책에서 들이대는 이 같은 대화 제의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면초가의 신세만 더욱 심화돼가자 이 궁지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중국에 기대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막 다른 골목에 다다라 출구가 막히고 궁해지자 배신을 때렸다고 눈 흘기고 힐난하던 중국에 자존심과 눈치코치 다 버린 채 접근을 감행하고 나섰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安保理)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다. 중국을 포함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나라도 반대가 없었기에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돼 시행될 수 있었다. 더구나 중국은 대북제재 결의안을 엄격 집행할 것임을 국제사회를 향해 누차 공언해왔다. 그들이 북과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그 같은 논리를 설파해온 것은 은근히 북의 편을 들어 한 자락 유보 조건을 물밑에 암초처럼 깔아둔 것이라 봐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처리에 관한 순서와 완급의 문제로 이해한다면 제재 결의안의 본래 목적과 취지에 꼭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북이 제재에 못 견디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의향을 뚝 부러지게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협상을 기피할 이유가 없지만 그 전에 협상에 들어가는 것은 완급과 순서의 문제를 잘못 다루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창 제재 결의안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돌연한 북중(北中)의 만남이 제재 결의안의 집행을 이완케 하는 시발(始發)점이 되거나 중국이 과거처럼 결의안 집행의 예외지대가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는 점은 아무리 힘을 많이 주어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물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며 세계평화를 위한 가장 무거운 정도의 중책을 떠안고 있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구촌 성원인 중국이 최소한 북의 의중대로 뭔가를 합의해주고 동의해주고 움직여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못 가질 이유가 없다. 중국의 외교적 행위와 조치 그리고 그 논리는 세계를 설득하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으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체면이 서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의 쑥덕거림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관계가 변덕을 부리거나 말거나 언제나 이런 일에 신경을 전연 안 써도 되는 통일의 날이 올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김정은의 비자금 금고가 고갈되는 날이 필시 통일의 날이 될 터인데 그 날은 언제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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